[굄돌] 남산 산책

[굄돌] 남산 산책

조은 기자 기자
입력 2000-04-20 00:00
수정 2000-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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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에 다녀왔다.경주 남산이 아닌 서울 남산에서 도시의 저녁나절을 내려다보았다.남산을 저희 집 정원이라고 말하는 친구가 있다.그 친구는 20여 년동안 남산 아래서 살고 있다.

남산을 저희 집 정원이라 표현한다고 해서 그녀의 집이 으리으리한 대저택은아니다.그녀는 남산 아래 부촌이 밀집해 있는 이태원이나 한남동에서 사는것이 아니라 이북에서 월남한 실향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터를잡고 살게 되어 일명 해방촌이라고 불리는 행정구역 용산동의 허름한 골목안에서 살고 있다.

황사바람이 잦은 올 봄은 유난히 춥게 느껴진다.분명 마음이 느끼는 한기일것이다.남산에는 진달래와 개나리,벚꽃과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었다.어떤 나무는 이미 꽃을 다 떨어내고 푸른 잎을 틔웠다.산당화도 실눈을 뜨더니 탄성을 지르며 불길처럼 번져간다.

활짝 피어버린 꽃보다는 조심스럽게 생명의 촉수를 더듬고 있는 꽃봉우리에눈길을 주며 친구와 나는 천천히 걸었다.저녁 때라 사람들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고 주택가에서 올라오는 확성기 소리가 돌부리처럼 우리의 발길에 걸렸다.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대부분의 소리에선 알 수 없는 폭력이 느껴진다.

그 속엔 말하는 자의 생각을 내 삶 속으로 흡수하고 싶은 영양분이 없다.담론이 아니기 때문일까,푸석푸석하고 고압적이다.

친구와 저녁을 같이한 후 남산순환도로를 달려 집으로 돌아올 때 남산 아래의 도시를 유심히 내려다보았다.불을 켠 시가지가 밤바다를 연상시켰다.

어둠을 밝히고 있는 불빛들은 달빛을 신비롭게 하는 바다의 표면처럼 생명력이 느껴졌다.그 중 차도가 유난히 내 눈길을 끌었다.어둠 속에서 불을 밝힌차들이 질주하고 있는 도로들은 캄캄한 지하의 길을 헤치고 나와 환한 꽃망울을 터뜨린 자연의 생명력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나도 그 길을 달려가고 있다는 데 순간적이나마 안심이 되었다.

조은 시인
2000-04-2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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