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언내언] 무급휴직

[외언내언] 무급휴직

이상일 기자 기자
입력 2000-04-19 00:00
수정 2000-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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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이 늘면 어느 시점에선가 일과 시간,그리고 소득간의 ‘파우스트적인흥정과 갈등’이 일어난다.돈벌기 위해 여가를 희생할 것인가,아니면 소득을포기하는 대신 휴가와 여가를 더 즐길 것인가.

샐러리맨들은 누구나 한번쯤 이런 저울질을 하며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꾼다.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는,다람쥐 쳇바퀴같은 ‘9-6’의 일상,주당 평균47시간의 근로시간,재충전이나 해외여행이 힘든 연간 1주일의 짧은 휴가--.

30여년간 10만여 시간의 지속적인 노동은 사람을 질리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수개월이나 1년 정도의 휴직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우리나라 일터에서 일종의 특권처럼 간주된다.극소수 샐러리맨들만이 회사연수로 ‘공식’휴직할 수 있다.성직자들이나 일부 교수들이 6년 일하고 갖는 1년간의 안식년은 일반 샐러리맨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근로자들에게는 월급을 받지 않고 쉬는 무급휴직조차 어렵다.‘잠시라도 푹쉬고 싶다’고 말했다가는 ‘아주 쉬라’고 할까봐 겁내고 있는 처지이다.

환란 직후 샐러리맨들은무급휴직이란 말조차 꺼내기를 두려워 했다.노조도반대했다.정부나 회사측이 감원의 대체 수단으로 무급휴직을 활용하자 ‘일시 놀게 한 뒤 자를 것’이라는 우려가 번진 탓이다.

최근 서울시의 한 40대 국장이 1년간 ‘자발적으로’ 무급휴직을 신청한 뒤가족들과 함께 세계일주에 나서 눈길을 끈다.그는 시정개발연구원으로 전보돼 ‘1년 이상 휴직할 수 있다’는 연구원의 규정에 따라 휴직한 것으로 알려졌다.주위에서는 “관료사회에서 그동안 자비유학 외에는 무급휴직이 인정되지 않았다”며 ‘변칙’을 지적하는 소리도 있다.출세 지향적인 공무원사회에서 1년간 모든 일을 접고 해외여행을 나가는 배짱과 처지를 부러워하는사람도 있다.

단순히 질투나 규정위반차원에서 시비할 일은 아니다.휴직이 개인과 직장에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도 적지 않다.미국의 제록스사는 오히려 사회봉사를전제로 한 사원들의 안식년제를 적극 실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충분한 여가와 새로운 경험으로 사원들의 업무능력이 향상됐다는 평가에 따른 것이다.

기업 핵심 연구인력들의 사기를 올리는 특별 인센티브 방안으로 돈을 더 주는 대신 안식년이 바람직하다는 LG경제연구원의 제언도 있다.창의적인 컨텐트와 아이디어가 중요시되는 시대에 연수를 위한 유급휴직 혜택은 못 줄 망정 우리 기업과 관료조직도 무급휴직을 막지는 말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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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 논설위원
2000-04-19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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