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문화프론트라인](9)판타지문화

[21세기 문화프론트라인](9)판타지문화

김종면 기자 기자
입력 2000-03-24 00:00
수정 2000-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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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국 판타지 문학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우리만의 독특한 특성을 지닌 판타지를 개발하는 것입니다.현재 쏟아져 나오고 있는 판타지들은 서양과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 많아요.어디선가 보았던 설정,접해본 듯한 스토리 라인으로는 더이상 호응을 얻을 수 없습니다” 최근 ‘극악서생’(도서출판 자음과모음)이란 무협 판타지소설을 낸 작가 유기선씨(31)는 “판타지문학도 이제 내용과 형식의 차별화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한다.유씨는 현재 하이텔 사이버 PC문단에 ‘세계정화재단시리즈’라는 심령판타지소설을,하이텔 문학관 ‘이달의 작가’ 코너에 ‘시간의 감촉’이란 단편 판타지를 연재하고 있는 신세대 작가.지난 95년에는 정보통신부가 주최한 제2회 게임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입상한 이력도 갖고 있다.

“요즘 판타지소설들을 보면 이른바 톨킨식 세계관,즉 북구의 신화를 바탕으로 컴퓨터 게임의 줄거리를 합성한 수준에 머무는 것들이 많습니다.물론이에 반기를 든 작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죠.이우혁 같은 이는 그의 소설 ‘왜란종결자’에서 판타지는 왜 북구 신화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라고묻습니다.문화 사대주의가 아니냐는 것이지요.하지만 문제는 그런 지적이 단발성에 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판타지와 무협의 가로지르기’를 시도하는 ‘극악서생(極惡書生)’은 나름대로 독창성을 지닌 작품이라 할 수 있다.이제 막 군문을 나선 진유준이라는 한국인이 중국 어느 시대 ‘극악서생’이란 최고권력자의 몸속으로 들어가 기상천외의 모험을 펼친다는 게 기둥줄거리.작가는 이 소설에서 기존의 북구 신화를 배경으로 삼지 않는다.굳이 신화와 결합되지않더라도,또 시공간적인 배경이 중세 유럽이 아니더라도 판타지가 판타지일수 있는 요소는 무궁무진하다고 믿기 때문이다.“일부 판타지 매니아들이 무협소설을 ‘동양적 판타지’라고 정의하고 있는데서도 알 수 있듯이 무협소설은 판타지적인 요소로 가득합니다.무협소설과의 퓨전화,그를 통한 새로운유형의 판타지.그것이 바로 제 소설이 겨냥하는 바죠” 그러나 ‘극악서생’에도 문제점은 적지않다.PC통신 조회수 37만회를 넘긴 화제작이지만 이 소설에는 말장난의 남발,밭은 호흡의 문장 등 PC통신 작가들에게서 흔히 볼 수있는 글쓰기의 약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한국형 판타지’를 개발하는데 늘 관심이 있다는 유씨는 국내에서 세를얻고 있는 일본 판타지소설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일본의 판타지소설에대해 거부감을 갖지도, 가질 필요를 느끼지도 않습니다.한국에도 일본의 판타지소설 못지않는 수작들이 많이 있어요.그럼에도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일본 판타지를 찾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는 ‘은하영웅전설’의 치열함보다 ‘용의 전설’의 명쾌함을,’아루스란 전기’의 광막함보다‘하얀 로냐프강’의 서사시적 아름다움을 동경하며 ‘슬레이어즈’의 유쾌함보다 ‘마왕의 육아일기’의 소박함에 끌린다.또 ‘드래곤 라자’의 흡인력과 한국적 위트를 ‘로도스 전기’의 장렬함보다 사랑한다고도 했다.

“최근 판타지 장르는 PC통신을 통해 엄청나게 외연을 넓혀가고 있어요.판타지문학은 이제 ‘주변부 문학’에서 벗어나 한국문학의 중심권을 향해 진입하고 있습니다.그 위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베스트셀러나 화제 중심의평가에서 탈피, 보다 진지한 접근자세가 필요합니다”모두 7권으로 완성될 ‘극악서생’은 현재 1권이 나온 상태. 올 연말까지 완간되는대로 그는 인도 설화가 가미된 본격 판타지소설 ‘신용전(神龍傳·가제)’을 써나갈 계획이다.

“누군가 새로운 밀레니엄 컬처의 으뜸 덕목은 ‘경계허물기’라고 한 말이생각납니다.나의 판타지문학에 대한 형식실험 또한 그것을 키워드로 하고 있어요”김종면기자 jmkim@.

*판타지문학 기원과 현주소.

현실과 현실이 아닌 것,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것과 상식을 초월하는 것.그런것들의 경계를 모호하게 처리한 문학작품을 일단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

서양에서는 영국작가 J.R.R.톨킨이 1955년 ‘반지의 군주’(국내 번역본 제목은 ‘반지전쟁’)를 펴낸 것을 계기로 판타지문학이 크게 성행했다.톨킨이북구와 켈트신화를 토대로 창조해낸 환상세계 ‘미들어스(Middle-earth)’는 이후 많은 작가들의 판타지 모델이 됐다.

미국에서는 1년에 500∼600종의 판타지소설이 출간된다.독자도 20대에서 30대에 걸쳐 두터운 층을 형성하고 있으며,대학에는 판타지소설론 강좌도 마련돼 있다.일본에서는 민담과 전설 그리고 괴담들이 판타지의 옷을 입고 다양하게 선보인다.1980년대 말 판타지붐이 일기 시작해 그 기세가 수그러들지않고 있다.‘은하영웅전설’과 ‘아루스란 전기’의 다나카 요시키,‘로도스전기’를 쓴 미즈노 료 등이 이 분야의 대가다. 한국의 판타지는 환상계를다룬 ‘구운몽’이나 ‘금오신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홍길동전’ 또한주술적인 세계를 펼쳐보이는 모험류 판타지다.

판타지문학 작가는 대부분 등단이라는 경로를 거치지 않는다.게다가 하위장르로 간주돼 평단이나 본격문학을 선호하는 독자들로부터 소외당해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판타지문학은 이제 더이상 소수 매니어들만의 향유물이 아니다.하이텔에 연재됐던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98년)가 40만부 넘게 팔리면서 출판계에서는 판타지붐이 일었다.‘드래곤 라자’는 본격적인 한국 판타지소설의 시조인셈.그 이전에도 ‘퇴마록’이 출판돼 화제를 모았지만 엄밀히 말해 그것은 판타지소설이라기보다는 공포소설에 가깝다.

현재 서점가에는 김예리의 ‘용의 신전’,이상균의 ‘하얀 로냐프강’,홍정훈의 ‘비상하는 매’,김상현의 ‘탐그루’,이수영의 ‘귀환병 이야기’등판타지소설들이 숱하게 나와 있다.바야흐로 판타지소설은 하나의 장르소설로자리잡아 가고 있는 추세다.

김종면기자
2000-03-2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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