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님 말씀을 들어보면, 사람이 잘못을 저지른다는 점에서 군자와 소인이크게 다를 바가 없다.물론 군자가 일부러 잘못을 저지를리야 없을 것이다.그것은 소인배도 마찬가지이다.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그 사실을 나무랄 자격이 있는 사람은없다. 알고 보면 자기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오히려 제가 더하면 더했지덜하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오죽하면 뭐 묻은 개가 겨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이 생겼으랴? 예수님도 자기 눈 속에 들보가 있는 놈이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뽑아주겠다고 하는 그게 바로 위선자의 모습이라고 신랄하게 말씀하셨다.물론 남의잘못을 지적하고 타이를 자격을 지닌 사람이 있기야 하겠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사람은 내가 보기에 마지못할 경우가 아니면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것 같다.그저 자비(아픈 사랑)의 눈으로 안타까이 바라볼 따름이다.
왜 그럴까? 잘못이란 그것을 저지른 본인이 고쳐야지 다른 누가 고쳐주거나없애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 떠난 자식이 제 발로 돌아올 때에야 진정한 귀가가 이루어진다.만일 아버지가 그를 붙잡아 억지로 데려온다면 그것은 귀가가 아니다.자식은 틈을보아 또 떠날 것이다.혹시 그럴 기회를 얻지 못하여 집에 머물러 있다 해도몸만 거기 있을 따름이지 마음은 이미 딴 데 가 있다.그것을 어찌 귀가했다고 말하겠는가? 다시 공자님 말씀을 들어보면,잘못을 저지르고 나서 그것이 잘못임을 알았을 때 스스로 깨달았든 누가 밝혀내서 알게 되었든,아무튼지간에 자기 잘못을 알았을 때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서 군자와 소인이 달라진다.
자기 허물을 애면글면 감추려 하다가 뜻대로 안되어 결국 밝혀져도 가능하면 다른 누군가에게 핑계를 대는 자는 알아볼 것도 없이 소인배다.반면에 자기 잘못을 시원스레 인정하고 그것을 고치는 데 망설임이 없다면 그런 사람을 공자님은 군자라고 부른다.
자,잘못을 저질렀다.이제 어쩔 것인가?감추고 핑계대고 그러면 소인배요 드러내고 고치면 군자다.너는 군자가 되려느냐?소인이 되려느냐?이렇게 물으면누구도 소인배가 되겠다고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어째서 시방 이 나라에는 특히 여·야가 맞서 겨루는 정치판에서는 자신의 잘못을 시원하게 인정하고 물탄개(勿憚改·거리낌없이 고침)하는 군자의 모습을 이다지도 찾아보기 힘든 것일까? 그렇게들 잘못이 없단 말인가? 그들의 말대로 과연 모든 잘못은 야(野)에만있고 모든 잘못은 여(與)에만 있는 것인가?이건 도무지 말이 안된다. 사람사는 세상에서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그런데 어쩌면 그렇게들 모든잘못이 상대한테만 있다는 그런 말도 안되는 주장을 날이면 날마다 지겹도록늘어놓는단 말인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잘못이 아니다.그것을 고치지 않는 것이 잘못이다.사람이 어떻게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살 수 있기를 기대한단 말인가? 군자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일식·월식과 같아서 모든 사람이 보게 되는데 그가 그것을 고치면 모든 사람이 우러러본다고 했다.그러니 군자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잘못을 저지르고서도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는다는 얘기니 말이다.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수 없이 만들고서도 매번 놓치고마는 이른바 선량(選良)들을 보면서 그래도 또 그들 가운데 몇을 가려뽑아야 하는 국민의 한 사람은 그저 가슴만 답답하다.
이현주 목사 아동문학가
어떤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그 사실을 나무랄 자격이 있는 사람은없다. 알고 보면 자기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오히려 제가 더하면 더했지덜하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오죽하면 뭐 묻은 개가 겨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이 생겼으랴? 예수님도 자기 눈 속에 들보가 있는 놈이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뽑아주겠다고 하는 그게 바로 위선자의 모습이라고 신랄하게 말씀하셨다.물론 남의잘못을 지적하고 타이를 자격을 지닌 사람이 있기야 하겠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사람은 내가 보기에 마지못할 경우가 아니면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것 같다.그저 자비(아픈 사랑)의 눈으로 안타까이 바라볼 따름이다.
왜 그럴까? 잘못이란 그것을 저지른 본인이 고쳐야지 다른 누가 고쳐주거나없애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 떠난 자식이 제 발로 돌아올 때에야 진정한 귀가가 이루어진다.만일 아버지가 그를 붙잡아 억지로 데려온다면 그것은 귀가가 아니다.자식은 틈을보아 또 떠날 것이다.혹시 그럴 기회를 얻지 못하여 집에 머물러 있다 해도몸만 거기 있을 따름이지 마음은 이미 딴 데 가 있다.그것을 어찌 귀가했다고 말하겠는가? 다시 공자님 말씀을 들어보면,잘못을 저지르고 나서 그것이 잘못임을 알았을 때 스스로 깨달았든 누가 밝혀내서 알게 되었든,아무튼지간에 자기 잘못을 알았을 때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서 군자와 소인이 달라진다.
자기 허물을 애면글면 감추려 하다가 뜻대로 안되어 결국 밝혀져도 가능하면 다른 누군가에게 핑계를 대는 자는 알아볼 것도 없이 소인배다.반면에 자기 잘못을 시원스레 인정하고 그것을 고치는 데 망설임이 없다면 그런 사람을 공자님은 군자라고 부른다.
자,잘못을 저질렀다.이제 어쩔 것인가?감추고 핑계대고 그러면 소인배요 드러내고 고치면 군자다.너는 군자가 되려느냐?소인이 되려느냐?이렇게 물으면누구도 소인배가 되겠다고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어째서 시방 이 나라에는 특히 여·야가 맞서 겨루는 정치판에서는 자신의 잘못을 시원하게 인정하고 물탄개(勿憚改·거리낌없이 고침)하는 군자의 모습을 이다지도 찾아보기 힘든 것일까? 그렇게들 잘못이 없단 말인가? 그들의 말대로 과연 모든 잘못은 야(野)에만있고 모든 잘못은 여(與)에만 있는 것인가?이건 도무지 말이 안된다. 사람사는 세상에서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그런데 어쩌면 그렇게들 모든잘못이 상대한테만 있다는 그런 말도 안되는 주장을 날이면 날마다 지겹도록늘어놓는단 말인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잘못이 아니다.그것을 고치지 않는 것이 잘못이다.사람이 어떻게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살 수 있기를 기대한단 말인가? 군자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일식·월식과 같아서 모든 사람이 보게 되는데 그가 그것을 고치면 모든 사람이 우러러본다고 했다.그러니 군자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잘못을 저지르고서도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는다는 얘기니 말이다.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수 없이 만들고서도 매번 놓치고마는 이른바 선량(選良)들을 보면서 그래도 또 그들 가운데 몇을 가려뽑아야 하는 국민의 한 사람은 그저 가슴만 답답하다.
이현주 목사 아동문학가
2000-03-11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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