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언내언] 고구려 영토

[외언내언] 고구려 영토

장청수 기자 기자
입력 2000-01-26 00:00
수정 2000-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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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高句麗)는 고대 삼국시대의 한 나라로 기원전 37년 갑신(甲申),북부여(北扶餘)의 주몽(朱蒙)동명왕(東明王)이 세웠으며 28대 보장왕(寶藏王)27년(서기 668년)에 이르러 나당(羅唐)연합군에게 멸망한 것으로 교과서에 수록돼 있다.또 700여년 동안 만주일대와 한반도의 넓은 영토를 통치하였으며,특히 제19대 광개토왕(廣開土王)때는 남북으로 영토를 크게 넓혀 만주 전역과 한강 이북을 장악하고,신라를 도와 왜군을 궤주(潰走)시키는 등 전성시대를 이뤘다.

만주 집안현(輯安縣)통구(通溝)에서 발견된 높이 6.27m의 광개토왕비석은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비석으로 비면(碑面)에는‘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라고 쓰여 있으며,비문의 내용은 고구려·신라·가야가 연합해서 왜국(倭國)과 싸운 일과,왕의 일생 사업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북한의 권위있는 역사학자 손영종(孫永鐘)이 쓴 고구려사(전3권,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가 소개됨에 따라 남북한의 고구려 역사에 대한 차이점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한 사례로고구려의 건국 시기를 남한은 서력(A.D.)전후로 보고 있고 북한은 기원전 227년으로 잡고 있다.또 고구려의 최대 영토와 관련,서쪽과 북쪽경계에서 남북한 시각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남한의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최대 판도를 이뤘던 5세기후반의 고구려 영토를 서쪽으로 요하 부근까지,북쪽으로는 북부여가 있었던북만주 일대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그러나 북한은 고구려가 서쪽으로는 요하보다 훨씬 서쪽인 대릉하 하류에서 의무려산에 이르는 곳까지,북쪽으로는 중국의 내몽고자치구까지 각각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

손영종이 쓴 논문 ‘고구려의 영토확장 과정에 대하여’에 따르면 고구려는 초기에 이미 사방 2,000리라는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로 되었고 6∼7세기에 와서는 동서 6,000리,남북 수천리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가진 크고 강한나라가 되었다고 기술했다.또 고구려의 영역이 내몽고자치구에 이르렀다는근거로 ‘고려성’등 고구려와 직접 관련있는 지명이 지금까지 여러곳에 남아 있는 사실을 예로 들었다.한때 고구려가 그 부근까지 진출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아무튼 북한 역사학자의 현지답사를 통해 밝혀진 고구려 영토확장은 고구려 역사조명에 크게 기여한 사료적(史料的)가치로 평가된다.우리 선조들이 만주와 내몽고까지 질주하며 산하를 누볐던 그 기상이 새삼 가슴속 깊이 진한 감동으로 느껴진다.그래서 우리의 통일이 더욱 절실한지도 모르겠다.

장청수 논설위원 csj@
2000-01-26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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