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매일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작(1)창 달린 방

대한매일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작(1)창 달린 방

안은영 기자 기자
입력 2000-01-04 00:00
수정 2000-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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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달린방-안은영◈◆등장인물해희·해우·미라·초코파이 아줌마·주인남자◆무대지하단칸방(씽크대가 방 안에 있는 원룸,창문이 없는 게 특징)성당(연못가)정신병원 매점(입원실 내에 위치)성당과 방이 한꺼번에 보여진다.

방 보여질 때도 미라의 기도하는 모습은 풍경처럼 계속된다.

1.거미줄 뜯어먹기조명 밝아지면서 해우의 신음소리 더 고통스럽게 난다.

해우,붕대 감긴 팔목을 감싼 채 까만 봉지에 얼굴 처박고 있다.호흡 빨라지다가 잠시 후 스르르 방바닥에 웅크리고 눕는다.일회용 부탄가스,해우의 몸에 깔리고 부딪쳐서 쇠소리 낸다.

해우:으으으으…으으으으….

해희:(방문 삐그덕 열고 들어 와)미친사람한테 파묻혀 나까지 도는 건 아닌지 몰라.(해우보고)너 또!(해우를 일으켜 흔든다)해우:(신음소리만)해희:(해우 쥐어뜯으며)너 감옥 가!더 이상은 나도 못 참아.(식탁보로 덮어놓은 밥상을 들쳐보고)며칠 째 밥도 안 먹고 죽으려고 작정 했어!(부탄가스통 내 동댕이치고)나가 죽어!나가!(주저앉아 얼굴 감싸고 흐느껴 운다)낮은 천장에 매달린 오래된전구,깜박깜박.

2.사팔뜨기 사랑성당에서 결혼 축하 곡이 흐른다.

해우,미라 연못에 꼬챙이 담궈 휘젓다가 돌멩이 두 개 찾아낸다.각자 발등에돌멩이 얹고 절룩절룩 연못가로 향한다.

해우:저 신랑 신부,주말 마다 성당서 섹스한 거 아니?미라:설마.

해우:(발등의 돌멩이 떨어뜨려 안타까워 하며)어제도 봤어.

미라:(떨어지려는 돌멩이,똑바로 얹고 절룩다리로 연못가 가깝게 가며)왜 여기서 했을까?해우:(돌멩이 다시 발등에 얹고)우리도 그러자.

미라:(돌멩이,연못에 던지고 넘어진다.물 조금 튄다)뭘?해우:(돌멩이,연못에 던지고 넘어질 뻔 한다.물 조금 튄다)사랑.

미라:(한쪽다리 들고 발등의 흙 털면서)사랑?해우:(새끼손가락 보이며)약속 해.

미라:(새끼손가락 걸고 흔들며)꼬옥-꼬옥-약속해.

3.거미줄 뜯어먹기전구,깜박깜박.

해희:(훌쩍거리며 설거지한다)해우:(몽롱한 얼굴)누나,일찍 왔네.

해희:…해우:(몸에 전율이 온 듯 재빨리 두리번거리다가 한쪽 구석에 부탄가스통이나란히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머리를 떨군다)해희:경찰서 가자.

해우:(머리가 아파 미간을 찌푸리고)다신 안 그래.

해희:팔목은 또 뭐야?말 안 해?해우:고무장갑 치워.앗,차갑다니까.(천장 본다)전구,깜박 깜박.

해우:(서랍장 뒤지며)불 나가겠다.전구 사 둔 거 있지?해희:미라 때문이니?해우:(서랍장 뒤지면서)없네.

해희:그 년이 나보다 중해?해우:미라 얘긴 하지마.

해희:(비웃으며)왜?해우:(문 박차고 나가며)씨팔.

해희:어디 가!4.까마귀야 안녕?성당에서 결혼 축하 곡이 흐른다.

해우,미라 앉아서 연못에 흙가루 뿌린다.

해우:(눈에 흙 들어가 눈 비비며)세상에서 없어지지 않는 게 뭔 줄 아니?미라:(해우 눈에 바람불어주며)후--하늘과 후--땅.

해우:(연못에 조약돌 던지고)그건 세상에 속하지 않아.

미라:(해우가 쥐고있는 조약돌 빼앗아 연못에 던지고)죽음인가?생명?해우:(손 털고)누나는 햇빛이라는데 난 지금 들리는 결혼 축하곡 같아.

미라:(바지에 손 닦고 해우 뒤에 가서 허리 꼭 잡으며)오토바이 탈 때만 빼고 넌 시시해.

해우:(뒤돌아보고)좋아?미라:(눈 살짝 감고 입맛 다시며)오토바일 타는 니가 싫지만 멋 나.

해우:(속삭이듯)오토바이는 우리 존재만 빼고 세상을 다 녹여 주잖아.

미라:(눈 꼭 감고 해우 귀에 대고 귓속말)우릴 따라 잡지도 못해.

5.거미줄 뜯어먹기전구,깜박깜박.

해우,전구 보고 눈살 찌푸리며 들어온다.

해희:어디 갔다 와?해우:(힘없이)전구 사러.(전구를 갈려다가 바닥에 떨어뜨린다)전구,깨진다.

해희:(비명)해우:(깨진 전구,쓰레받기에 주워 담는다)해희:(비명)해우:(전구에 찔려)아!해희:(더 큰 비명)해우:(찔린 손을 빨며)시끄러! 해희:(해우의 손보고)유리 박혔어?해우:(붕대 감긴 손목이 해희의 몸에 부딪치자)아야.

해희:얼마나 다쳤길래 그래?풀어.

해우:누나가 의사라도 돼?해희:풀어!해우:됐어.

해희:안 풀래?해우:됐어.

해희:어휴!(주저앉아 해우보고 눈 흘기고 흐느껴 운다)해우:(미안한 듯)하긴,누나는 정신병원 있으니까 환자들 가끔 봐주기도 하겠다.

해희:(무릎 사이에 얼굴을 박은 채)내가 왜 봐주니?의사,간호사는 노니?(손등으로 눈물 닦고)나갔다 올게.(방문 열려다 깜짝 놀라)왜요?주인남자,실실 웃으며 방에 들어온다.

주인남자:(해희의 어깨를 어루만지며)퇴근한 건가? 해희:방 빼라구요?주인남자:(투덜대며)전구가 와이래?와이리 빤딱빤딱 난리야.

해우:나이먹은 전구,뒈질려구 그러죠.

주인남자:(놀라며)도,동생 왔어?(애써 웃는 얼굴 만들며)언제 온거야.

해우:전구 하나만 얻읍시다.

주인남자:오늘안으로 방 값이나 내.

해우:변태 같은 새끼.

주인남자:어이?해우:나이 먹어 가지고 미친놈.

주인남자:어이?해우:설마 했더니 진짠가 보네.

해희:(해우의 팔 잡아끌려고 애쓰며)내일 월급 받는다 했잖아요,퇴근하자마자 줄께요.

해우:(해희의 말 끝나기도 전에)어린 계집들 앞에서 불알 놀려댄다구?주인남자:얼어죽고 싶어 환장했구먼!해우:환장은 당신이 잘하는 거고!주인남자:쫓겨나고 싶나!해우:(비꼬아)누나 병원 가고싶어 몸에 두드러기라도 났수!해희:해우야!(주인남자에게 굽신거리며)가세요,예?죄송해요.

해우:누나!해희:가세요,예?주인납자:(해희의 엉덩이 톡톡 치고 윙크하며)희야는 난중 커피 한 잔 하자구.

해우:개놈.

해희:쉿!주인남자,문 모서리에 머리 부딪쳐 신경질 내며 나간다.

해우:조심해.

해희:그러니까 집 비우지 마.(큰 자물쇠가 걸려 있는 방문고리를 가리키며)솔직히 나도 겁나.

해우:앞으론 집 안 비울께.

해희:공터에서 아줌마끼리 주인아저씨 얘기하는 거 들었는데.

해우:어디?해희:집 앞 공터.

해우:불타 없어진 집?해희:나까지 이상하게 본단 말야.

해우:누나가 뭘!해희:(잠바를 걸치며)전구나 새로 사와야겠다.

6.벽안의 벽,또 그 벽 속의 벽.

성당에서 결혼 축하 곡이 흐른다.

해우와 미라,발등에 조금 무거운 돌멩이 얹고 절룩절룩 연못가로 향한다.

미라:빨 주 노 초 파 남 보.빨 주 노 초 파 남 보.

해우:빨 주 노 초 파 남 보,빨 주 노 초 파 남 보.

미라:(절룩걸음 점점 빠르게 가서 돌멩이,연못에 던지며)빨주노초파남보,빨주노초파남보!(물 튄다)해우:(미라 뒤를 이어 돌멩이,연못에 던진다)빨주노초파남보!(물 튄다)미라:(발등 털면서)하숙생,집나갔어.

해우:(주저앉으며)어?미라:(해우 옆에 앉고)돌 할머니를 훔쳐갔어.

해우:소원들어 준다던 돌?미라:(애처로워서)일 억 년밖에 안된 젊은 돌인데.

해우:그럼 소원은?미라:(하늘보고)소원은 소원이기에 소원인거야.

해우:(장난스럽게 울먹이는 표정)불쌍한 소원.

미라:(해우보고)소원의 소원은 뭘까?7.거미줄 뜯어먹기해희:(전구를 갈아 끼우며)됐다.

흔들리는 환한 전구.

전구 빛이 방안을 왔다갔다한다.

해희:(빛처럼 환하게)꿈같아.

해우:(어둠처럼 시무룩하게)꿈 깨.

해희:(숨 깊게 들이마신다)해우:꿈 깨라구.

해희:(눈 찌푸리고)새 전구 갈 때마다 눈부셔.엄마 만나는 것 같아.

해우:(해희 툭,툭 치고)꿈 깨.

해희:(고개 갸우뚱,갸우뚱)엄만 꿈처럼 멀까?빛처럼 가까울까?제자리를 찾는 전구,작게 떨린다.

해우:(건들대며)미쳐가는군.

해희:정신병원에서 일하는 것도 미친 거니?해우:같이 미쳐갈 수는 있겠지.

해희:멀쩡한 사람,환자취급 받더라,뭐.꿈을 쫓다 미칠 수도 있지.그걸 모르는 니가 가엾다.

해우:(비웃으며)꾸미기 숙제해?해희:(편안하게 누워 전구 보면서)난 느껴.

해우:(어이없어 하다가 전구에 어깨를 부딪친다)흔들리는 전구.

사방을 도는 빛.

해우:(물 벌컥 들이키다가 일부러 엎지르고)현실은 이런 거야.

해희:(일어나 찌푸린 얼굴로 걸레질하며)뭐하는 짓이야!해우:쏟고,마르고,걸레같은 데 몸긁히고 색깔도 없이 죽는 게 현실이라구.

해희:겁을 온 몸에 바르고 사는 인간이나 그런 식으로 둘러대기에 바쁘겠지,(손가락질)너같이.

해우:꿈을 못 꾸게 만든 것도 엄마가 저지른 죄야.

해희:니 스스로 내린 생각일 테지.

해우:꿈은 꿈일 뿐이야.

해희:(설득하려는 듯이)우리도 엄마가 있었다면.

해우:(말 가로막고)그래,꿈같은 거 먹어가면서 별보고 기도도 하겠지.

해희:세상을 바로 못봤을지도 몰라.

해우:(실실 웃으며)세상을 뒤집는 게 내 꿈이야,소원이구.

해희:힘들고 차가운 세상일지라도 세상 준 엄마한테 감사해.

해우:그래서 주인남자한테 언제 당할 지 몰라 자물쇠로 무장하고 살어?해희:(능청스레)내 공간을 갖고 싶었을 뿐이야.

해우:쥐새끼도 살기 싫어 도망가는 이런 방이 그렇게도 아늑하셔?해희:(전구를 가리키며)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해.

해우:이런 방에서 상상력까지 키웠어?해희:(전구를 가리키며)저건 아무한테도 도둑 당할 염려 없는 우리 빛이야.

해우:숨막히게 할 뿐이지.가스통이 없으면 아무 것도 상상 못 해.

해희:(화가 나서)뭐?(치워놓은 가스통 봉지를 쥐어뜯으며)이게 니 머리를 썩게 만들었어!(비명 지르며 가스통을 이리저리 집어던진다)가스통에 전구가 부딪쳐 ^^,소리를 내면서 깨진다.

어둠.

해희:(소리,지친 목소리로)니가 말한 게 이거니?좋아?해우:(소리)유리 조심해.

어둠 속에서 깨진 전구를 치우는 해우의 몸소리.

해희:(소리)그래 넌 어떤 상상을 하게 되는데?해우:(소리,유리에 찔려)아야!해희:니 가슴으로 세상을 보면 갈기갈기 찢겨서 결국엔 피만 토하게 될꺼야.

문이 삐그덕 열리는 소리.

주인남자:(소리,간드러지게)희야?(놀라서)엄마나,이 놈들이 집 갖고 튀었네!방!방을 갖고 도망을 갔어
2000-01-0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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