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를 지키는 시인 이성선(58)에게는 오래된 버릇이 하나 있다.벌써 10년째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설악산을 향해 세번 절한다.아침만이 아니라,언제고 산만 보면 두근거려 합장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에게 산은 글로써 표현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산을 붓 하나로 들어올리려는 사람은 미친 자(者)”라고 까지 말한다.그런 그가 새시집 ‘산시(山詩)’(시와 시학사)를 펴냈다.
그는 설악산 북쪽,금강산의 맨 아랫 봉우리라는 신선봉(神仙峰) 기슭에서 태어났다.어린 시절,세수대야를 들고 마당에 나서면,물에 비친 산 그림자를 떠서 얼굴을 씻곤 했다.
지금도 산속에 들어가면 마음이 편하다.해질녘이면 산은 어떤 울림을 주고,그 울림은 견딜 수 없도록 자신을 부르는 것 같다는 것이다.이 시집에 실린‘산달(山月)’은 그런 산에 대한 그리움과 존경을 담고 있다.
당신을 껴안고 누운 밤은/잠이 오지 않았습니다돌 하나는 품어도/사리가 되었습니다그의 시에는 이처럼 여백이 많다.그는 산시를 ‘가지를 친 겨울나무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성긴 나뭇가지 사이로 읽는 사람이 각자 자신의 삶과 연결시켜 읽으면 된다는 것이다.
연장선상에서 ‘산시’에는 평론가가 쓴 ‘해설’이 없다.그는 거창한 이유를 붙이지 않는다.다만 “어릴 적 박목월의 ‘나그네’를 읽을 때 무슨 해설이 필요했느냐”고 되묻는다.
시인 고은은 “동해에 시인이 없다면,그 동해에 죄짓는 일이 될 것”이라며이성선을 지목한 바 있다.그런 평가를 받는 우리 문단의 대표적 서정시인이정신주의에 탐닉하게 된 동기는 그러나 뜻밖에도 소외감인듯 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국문과에 진학하고 싶었으나,홀어머니가 강권하는 대로 농학과에 갔다.소외감 속에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된 뒤,지난 8월 명예퇴직할 때까지 국어 아닌 농업이나 기술 과목을 가르쳐야 했다.
그러나 생각처럼 되지않는 삶속에서 아침저녁으로 산과 바다를 바라보며 나무와 풀잎같은 ‘살아있는 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생명체 하나하나가 자신과 똑같은 우주안의 공동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시도 중요하지만,생명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자신의 시를 다른 사람과 조금은 다를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96년 속초·고성·양양 환경운동연합을 결성하는 데 참여하여 현재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현실’이 모든 것을 우선하던 70∼80년대에도 순수 서정시만 고수하던 시인에게는 의외의 직함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시를 쓰는 것과 같은 맥락일 뿐”이라고 말한다.“산과 자연이 훼손되는 것은 곧 내 어머니,내 가족이 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천혜의 자연이 눈앞의 경제적 이유로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그가 이른바 ‘운동’을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오히려 선시(禪詩)에 가까운 산시에서,인간내면의 세계를 탐구하는 신비주의쪽으로 더욱 기울어져 가고 있다.현재 그가 35박 36일 일정으로 인도와 티베트를 여행하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서동철기자 dcsuh@
그에게 산은 글로써 표현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산을 붓 하나로 들어올리려는 사람은 미친 자(者)”라고 까지 말한다.그런 그가 새시집 ‘산시(山詩)’(시와 시학사)를 펴냈다.
그는 설악산 북쪽,금강산의 맨 아랫 봉우리라는 신선봉(神仙峰) 기슭에서 태어났다.어린 시절,세수대야를 들고 마당에 나서면,물에 비친 산 그림자를 떠서 얼굴을 씻곤 했다.
지금도 산속에 들어가면 마음이 편하다.해질녘이면 산은 어떤 울림을 주고,그 울림은 견딜 수 없도록 자신을 부르는 것 같다는 것이다.이 시집에 실린‘산달(山月)’은 그런 산에 대한 그리움과 존경을 담고 있다.
당신을 껴안고 누운 밤은/잠이 오지 않았습니다돌 하나는 품어도/사리가 되었습니다그의 시에는 이처럼 여백이 많다.그는 산시를 ‘가지를 친 겨울나무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성긴 나뭇가지 사이로 읽는 사람이 각자 자신의 삶과 연결시켜 읽으면 된다는 것이다.
연장선상에서 ‘산시’에는 평론가가 쓴 ‘해설’이 없다.그는 거창한 이유를 붙이지 않는다.다만 “어릴 적 박목월의 ‘나그네’를 읽을 때 무슨 해설이 필요했느냐”고 되묻는다.
시인 고은은 “동해에 시인이 없다면,그 동해에 죄짓는 일이 될 것”이라며이성선을 지목한 바 있다.그런 평가를 받는 우리 문단의 대표적 서정시인이정신주의에 탐닉하게 된 동기는 그러나 뜻밖에도 소외감인듯 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국문과에 진학하고 싶었으나,홀어머니가 강권하는 대로 농학과에 갔다.소외감 속에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된 뒤,지난 8월 명예퇴직할 때까지 국어 아닌 농업이나 기술 과목을 가르쳐야 했다.
그러나 생각처럼 되지않는 삶속에서 아침저녁으로 산과 바다를 바라보며 나무와 풀잎같은 ‘살아있는 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생명체 하나하나가 자신과 똑같은 우주안의 공동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시도 중요하지만,생명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자신의 시를 다른 사람과 조금은 다를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96년 속초·고성·양양 환경운동연합을 결성하는 데 참여하여 현재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현실’이 모든 것을 우선하던 70∼80년대에도 순수 서정시만 고수하던 시인에게는 의외의 직함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시를 쓰는 것과 같은 맥락일 뿐”이라고 말한다.“산과 자연이 훼손되는 것은 곧 내 어머니,내 가족이 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천혜의 자연이 눈앞의 경제적 이유로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그가 이른바 ‘운동’을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오히려 선시(禪詩)에 가까운 산시에서,인간내면의 세계를 탐구하는 신비주의쪽으로 더욱 기울어져 가고 있다.현재 그가 35박 36일 일정으로 인도와 티베트를 여행하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서동철기자 dcsuh@
1999-11-03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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