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언내언] 알기쉬운 헌법

[외언내언] 알기쉬운 헌법

임영숙 기자 기자
입력 1999-10-18 00:00
수정 1999-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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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헌법을 읽는다.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지던 헌법이 쉽고 친근하게 다가온다.권위의식에 가득차 목에 힘을 잔뜩 주던 사람이 갑자기 따뜻한 이웃으로바뀐 느낌이다.

최근 현암사에서 출판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대한민국 헌법’은 우리헌법을 새로 쓴 것이다.내용을 바꾼게 아니라 표현을 바꾼 것이다.한자로 쓴 ‘前文’은 ‘머리말’,‘第1章 總綱’은 ‘제1장 기본정신’으로 바꾸고일본어투,중국어투,영어투가 뒤섞인 본문 내용을 우리말 어법에 맞게 모두고쳐 썼다.

이를테면 헌법 제10조 “모든 國民은 人間으로서의 尊嚴과 價値를 가지며幸福을 追求할 權利를 가진다.國家는 개인이 가지는 不可侵의 基本的 人權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義務를 진다”에서 ‘∼으로서의’는 일본어투이며‘∼가지며’‘∼가진다’는 영어 번역투이다.또 ‘∼적’은 여러 문장성분의 접미사로 두루 쓰는 중국어투다.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우리말투로 바뀐헌법 제10조는 훨씬 간명하다.“모든 국민에게 존엄한 인간 가치와 행복을추구할 권리가 있다.국가는 개인의 불가침 기본인권을 존중하고 철저히 보호한다” 그밖에 제67조 4항 “대통령으로 선거될 수 있는 자…”는 “대통령이 될수 있는 이…”로,제115조 1항 “선거인명부의 작성…”은 “선거인명부 작성…”으로 고치는 등 헌법 전문부터 부칙까지 거의 모든 조항을 손질했다.

이런 식으로 고쳐 쓴 새 헌법과 기존 헌법을 나란히 편집해 실어놓았다.두헌법을 비교하며 읽다보면 헌법을 제정한 지 반세기가 넘도록 이토록 졸렬한 표현을 방치해왔다는 것에 어이없어진다.

잘못된 헌법 문장을 바로 잡은 이는 이수열씨(71)다.초·중·고 교사로 47년동안 근무하고 정년퇴직한 우리말 연구가다.이미 ‘우리말 우리글 바로쓰기’란 책을 낸 바 있고 신문과 방송에서 잘못 사용하는 우리말을 지적하고고치는 작업을 몇년째 홀로 하고 있어 “재야 교열선생님”으로 불리기도 한다.신문에 글 쓰는 사람치고 이씨가 빨간 볼펜으로 교열한 자기 글이 담긴편지를 받아보지 않은 이는 드물 것이다.

이씨가 고쳐 쓴 헌법은 문장표현만 따진 것이라 법리에 어긋날 수 있다고지적하는 사람도 있다.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한자로 도배하다시피한,국적불명 표현으로 짜깁기한 헌법을 정확한 우리말로 다시 쓰는 작업이 시급하다는 것은 분명하다.헌법은 국가의 근본법으로 다른 법률과 판결문은 말할 것도 없고 각종 공문서와 시민들의 언어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이런헌법을 그대로 둔 채 바른 언어생활을 기대할 수는 없다.



임영숙 논설위원
1999-10-18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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