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차흥봉 보건복지부장관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차흥봉 보건복지부장관

차흥봉 기자 기자
입력 1999-08-24 00:00
수정 1999-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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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때니까 꽤 오래된 일이다.학교 운동장 옆에 자그마한 실습농장이 있었다.그 해는 이 농장에 학생들이 호박씨를 심었다.

그런데 어느날 누군가가 아직 떡잎이 채 나오지 않은 호박밭을 온통 파헤쳐놓았다. 담임선생님이 크게 화를 내셨고 당연히 추궁이 뒤따랐다.우리반 아이들 모두 운동장을 오리걸음으로 돌며 기합을 받았으나,범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그러던 중 한 아이가 범인을 지목했다.지목된 아이는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농아 친구였다.

그 때는 장애아 특수학교가 없어서 농아 친구도 다른 학생과 함께 일반학교에 다녔다.그 아이는 내가 한 일이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지만 한시라도 빨리기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못된 친구들이 만만한 상대를 골라 죄를 덮어씌웠던 것이다.

그 당시 반장이었던 난 그 아이가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제대로 옹호해 주지 못했다.그 아이는 우리들이 보는 앞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선생님으로부터 회초리를 맞았다.

몇년 전 40여년 만에 처음으로 그 친구를 다시 만났다.서로 얼싸 안았다.한참동안 악수를 하면서도 말을 할 수는 없었다.가슴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애인으로 이 세상을 살아오며 얼마나 어려웠을까라는 생각도 하며 나는 초등학교 시절의 그 사건 때문에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그 친구도 많은 사연이있었겠지만 말을 하지 못하고 내 손을 놓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많은 장애인들은 편견과 소외를 경험해 왔다.자아성장의 기회를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장애는 능력의 장애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능력이없는 것으로 취급당하는 경우가 많다.장애는 오히려 창조의 원천이 될 수 있다.사람은 무언가 부족할 때 그것을 메우기 위해 깊이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법이다.장애인으로 세계적 업적을 남긴 사마천,베토벤,헬렌 켈러,루스벨트 대통령,호킹 박사 등을 생각해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주소는 어떠한가.소비수준은 크게 늘어 선진국이지만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정당한 대우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지금 우리는 장애인을 건성으로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억울한 일을 겪도록 방치하고 있는것은아닌지,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인간적 성장을 위해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고 자기의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정의다.사회정의는 먼 곳에 있지 않다.차별과소외가 없는 사회를 향한 적극적 관심,그것이 사회정의의 첫걸음이다.
1999-08-24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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