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굄돌] 세상은 종말을 향해 치닫는가?

[굄돌] 세상은 종말을 향해 치닫는가?

주형일 기자 기자
입력 1999-08-12 00:00
수정 1999-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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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외출을 하지 않고 집에 있다보면 초인종을 누르는 방문객들이 많다.

문을 열어보면 대개는 선량해 보이는 사람들이 서 있다.그들은 나에게 전해줄 상당한 분량의 유인물들을 들고 있는데 그 유인물들 중에는 설문지 형식을 띤 것도 있다.그러한 설문지에 실려있는 몇 가지 간략한 질문들은 모두한 가지 질문으로 귀결된다.질문인즉,“당신은 종말을 믿는가?” 내가 조금 머뭇거리는 틈을 놓치지 않고 그들은 온갖 종말의 징후들을 제시한다.2000년 1월1일 모든 컴퓨터가 작동을 중지한다는 소위 ‘밀레니엄 버그’ 대재난,기상이변으로 인한 각종 재난들,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들,환경 오염,핵무기,화학무기의 공포.이러한 것들을 열거하고 난 후 그들은 모든 것이 결정돼 있다는 증거로 옆구리에 끼고 있던 두툼한 성경을 펼쳐보인다.

그들은 곧 있을 ‘최후의 심판’에서 구원받을 유일한 방법은 자신들이 제공하는 은신처에서 머무는 것이라고 비장한 어투로 말한다.빨간 줄을 쳐 놓은 성경의 문장들을 읽어주면서 말이다.그런데 재미있는 것은이렇게 종말이 온다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믿음의 근거로 삼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신의 예언이 수록됐다는 성경이고 또 하나는 신문과 방송으로 대표되는 언론 매체라는 것이다.성경은 종말을 확언하고 언론 매체는 성경이 확언한 종말의 징후들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언론 매체가 보여주는 지구 곳곳에서 일어난 참혹한 재해의 현장들,‘밀레니엄 버그’나 기상이변,환경 오염 등에 대한 선정적인 보도들은 종말론자들의 논리를 살찌우는 자양분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게다가 언론 매체는얼마 전부터 ‘세기말 현상’ 운운하며 독자적으로 종말론적 분위기를 만들어 오고 있지 않는가? 사실 종말론이나 ‘세기말 현상’ 운운이 갖는 허구적 요소에 대해 논리와이성으로 반박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하지만 문제는 종말이라는 말에 깃든죽음의 공포에 반응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라는 데 있다.어디선가텔레비전이 보여주는 폭우로 망가지고 파괴된 도시의 모습에 경악하며 종말에 대한 확신을 재확인하고 있을 사람들의 모습이떠오른다.

[주형일 서울대 강사]

1999-08-12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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