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굄돌]새로운 방언으로서의 사이버 언어

[굄돌]새로운 방언으로서의 사이버 언어

나희덕 기자 기자
입력 1999-06-28 00:00
수정 1999-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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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에 있는 동안 가르쳤던 제자들을 사회에서 다시 만나게 될 때가 종종있다.그들을 볼 때마다 시간의 흐름을 실감하게 되고,이제 그들의 선생으로서가 아니라 친구로서 앉아 있고 싶은 마음이 든다.그런데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내가 그들과 동떨어진 낡은 세계에 살고 있다는 거리감을 떨쳐버리기 어렵다.그 거리감은 대체로 대화내용의 새로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대화하는 말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문장을 완결시키지 않고 툭툭 끊는 습관이나 어미를 변형시키거나 생략해 버리는 말투는 거기에 익숙하지 못한 내 귀에는거슬리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했어요’를 ‘했어여’로,‘뭐예요?’를 ‘모예요?’로 발음한다든가,‘짱이다’ ‘방가요’ ‘어솨요’ 등 심하게 변형된 말을 섞어 쓰는 것이었다.이 괴상한 습관이 어디서 온 것인가 물었더니,컴퓨터 통신에서 흔히 쓰이는 말투라고 한다.내가 그것을 묻기 전까지 그들은 자신들이 쓰고 있는 말이 표준어와 어떻게 다르고 그것을 얼마나 파괴하고 있는지에 대해 거의 의식하지 않고 있는 듯했다.사이버 공간을 가장 생생한 현실로 받아들이는 그들에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그러나 그것이 사이버 공간만의 약호가 아니라 일상생활의 언어까지도 무의식중에 전염시키고 있다면,그리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물론 컴퓨터로 의사 소통을 하기 위해 되도록 짧은 표현을 찾게 되고,규범적인 문법을 깨뜨리면서 느끼는 일탈적 공감 역시 한 몫을 했을 것이다.그렇게 형성된 공용어들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끼리의 소속감과 친밀감을 더해준다는 점에서 일종의 방언 역할을 한다.매체의 발달로 지역적인 방언이퇴화되어 가는 대신 이제는 사이버 언어처럼 일정한 문화를 공유하는 세대들의 새로운 방언이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지역적 방언은 표준어에 없는 어감과 의미를 표현함으로써 언어를 풍부하게 만들지만,사이버 언어는 표준어를 파괴시킴으로써 언어를 기형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컴퓨터의 전파속도를 생각해 볼 때 우리의 언어는 이 새로운 방언의 위력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그리고 더 우려되는 것은 사이버 언어가 보여주는 유아성이나 통속화 경향이 언어의 태만성뿐 아니라 삶의 자세의 태만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희덕 시인]

1999-06-28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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