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년 聞慶 주민학살사건-국군소행 입증자료 발견

49년 聞慶 주민학살사건-국군소행 입증자료 발견

입력 1999-05-20 00:00
수정 1999-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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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12월 경북 문경의 한 산간마을 주민 80여명에 대한 집단학살 사건이 공비가 아닌 당시 국군 부대의 소행이었음을 입증하는 문서가 발견돼 사건발생 50년만에 진실이 밝혀지게 됐다.이 사건은 널리 알려진 거창 양민학살사건 등과는 달리 6·25 이전 한 마을에 ‘부역혐의’를 씌워 국군 2개 소대가 주민 80여명을 집단학살한 사건으로 문민정부 수립 이후 유족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해왔으나 증거자료가 없어 공비 소행으로 진실이 왜곡·은폐돼 왔다.

본사는 19일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와 맥아더기념관이 보관중인 주한 미 육군 무관이 도쿄 주둔 극동군사령부 정보참모부장에게 보낸 1950년 1월1일자 보고전문(문서번호-ARMA 10호)과 사건 직후 미 군사고문단이 자체조사한 ‘조사보고서’ 등 ‘문경양민학살’관련 문건 4건을 단독 입수했다.이 문건들에는 당시 학살에 가담한 국군의 소속부대명과 지휘관 명단,피해상황 등이 구체적으로 언급돼 있어 이 사건이 국군의 소행임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자료로 평가된다.

이에 따르면 석달마을 주민을 학살한 부대는 국군 제3사단 25연대 3대대 7중대 소속 제2·3소대 병력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49년 12월 24일 오후 2시 문경군 산북면 석봉리 석달마을 인근을 정찰하던 중 이 마을에 들이닥쳐 주민들을 한 곳에 집결시키고는 주민들에게부역혐의를 추궁한 후 별다른 확인절차도 없이 곧바로 주민들에게 카빈총·소총·수류탄·바주카포 등을 무차별 난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주민 127명 가운데 86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했다.사망자 가운데는 유아 3명,초등학생 9명이 포함돼 있었으며 가옥 27호중 23호가 불탔다.

학살후 이들은 생존자를 가려내 재차 확인사살까지 한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생존자 12명은 시체 더미에 깔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다고 이 문서들은 밝혔다.

사건 직후 3소대 지휘관 유진규소위,2소대 지휘관 안택효중사·김점동하사는 7중대장 유응철대위에게 이 사건을 보고했다.그러나 유중대장은 군의 책임을 모면키 위해 이의성 당시 문경경찰서장과 짜고 이 사건을 ‘공비소행’으로 상부에 보고한 것도 아울러 밝혀졌다.

한편 이같은 문건은 미 군사고문단이 공비들이 양민을 학살하는 쪽으로 전술을 전환했는지의 여부를 조사하던 과정에서 작성된 것으로 밝혀졌다.이 문건은 사건 후 경찰이 자체 비밀조사를 통해 진실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파문을 예상해 조사결과를 육군에 통보하지 않은 것이 확실하며,단 국회의원 8명에게는 정보를 전달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밝혔다. 국사편찬위원회 정병준 편사연구사(현대사전공)는 “미국내 한국관련 주요자료들이 대부분 폐기된 가운데 이 문건은 운좋게 살아남은 것으로 보인다”며 “미군 당국의 공식문서로 진실이 밝혀진 이상 정부차원의 재조사와 명예회복·보상 등 적절한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1999-05-2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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