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선 지정 폐지 이후 대형트럭 공포의 질주

차선 지정 폐지 이후 대형트럭 공포의 질주

입력 1999-05-04 00:00
수정 1999-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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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11시20분쯤 서울 올림픽대로 잠실대교 남단에서 김포공항쪽 100m지점.

화물을 가득 실은 서울 88마 32XX호 2.5t 화물트럭과 경기 90자 27XX호 20t 대형 트레일러가 빗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속 100㎞ 이상의 속도로 4차선 도로의 1·2차선을 전세라도 낸 것처럼 질주하고 있었다.

3차선으로 달리던 1t 소형 화물차가 갑자기 4차선으로 방향을 튼 뒤 앞서가던 승용차를 추월하며 차선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1차선으로 넘어오자 1·2·3차선으로 달리던 승용차 운전자들이 깜짝 놀라 일제히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이날 새벽부터 내린 비로 도로는 몹시 미끄러웠지만 화물 차량들은 속도에구애받지 않고 차선을 넘나들며 곡예운전을 계속했다.

반면 승용차들은 경적을 울리고 상향등을 번쩍이며 끼어드는 대형 화물차와 시계(視界)를 가리는 또다른 대형차를 피해 속도를 뚝 떨어뜨린 채 멀찌감치 3·4차선으로 밀려났다.

지난달 30일 자동차 속도 규제완화 및 차로지정이 폐지된 뒤 고속도로와 자동차 전용도로,시내 도로는 화물차들의 무법천지로 변했다.

그렇지 않아도 난폭과 과속 운전으로 지탄을 받았던 화물차들은 규제가 풀리자 제철이라도 만난 양 도로를 누비고 다녔다.

1차선 통행이 계속 금지된 건설기계차량과 위험물적재차량 등 특수차량들도 화물차들과 뒤엉켜 1차선을 점거했다.빗길인데도 차량의 속도는 80∼100㎞를 넘나들었다. 올림픽대로를 이용해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김모(34·회사원·서울 용산구한남동)씨는 “2일에는 과속으로 갑자기 끼어든 대형 화물차 때문에 사고를낼 뻔했다”면서 “앞으로 화물차의 횡포를 어떻게 견디어 낼지 벌써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녹색교통운동 민만기(閔萬基)실장은 “급커브길이 많고 중앙분리대도 없는우리나라의 도로에서 속도 규제가 완화되고 화물차들이 1차로로 들어오면 대형 교통사고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안전운전 의식이 미흡한 실정을 감안하면 규제완화는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경찰청과 규제개혁위원회 관계자는 “차종별 차로지정 및 속도제한은 선진국에서는 없는 제도”라면서 “비현실적인 제도로 많은 운전자들을 범법자로 만든다는 지적과 물류비용 증가에 따른 도로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규제를완화했다”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1999-05-0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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