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의 이력이 오래라고는 할 수없지만,늘 어려워 쩔쩔매는 것이 인간관계이다.인간관계는 그저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 가장 좋다는 주위의 충고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누군가가 이 사람과는 50㎝ 정도,저 사람과는 1m 가량 거리를 유지하라고 가르쳐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언젠가 읽은 글 중에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는 귀절이 있었다.이분법에 대한 탁월한 조소(嘲笑)인 셈이다.그럼에도 나 역시 이분법적 사고의 편리함에 길들여져 있는가 보다.주위를 둘러보면 대개 두 부류의 사람이 보이니 말이다.하나는 윗분을 극진히 섬기는 사람들이요,다른 하나는 아랫사람을 열심히 챙기는 사람들로 나뉘는 것 같다.
물론 사람을 유형화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는 줄 알지만,복잡한 현상을 단순화하기에는 유형화만큼 좋은 무기도 없는 것 같기에 위험을 무릅써 보련다.윗분을 극진히 모시는 사람은 대개 아랫사람들에게 가혹하다.‘내가 윗분 모시는 것 잘 보고 너희들도 나를 이렇게 모셔라’고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이런 사람일수록 내용보다는 형식을 중히 여기며,위·아래 서열의식이 확실하다.때로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불안감을 과잉충성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윗분의 마음은 그렇게 잘 헤아리면서 아랫사람의 마음은 ‘나 몰라라’ 하는 이들은 종종 조직에서 ‘왕따’가 된다.한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들은자신이 ‘왕따’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윗분 역시 눈 앞의 진상에만눈이 어두워,자신을 극진히 섬기는 부하 직원이 ‘왕따’인 것을 눈치채지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 주위를 안타깝게 한다.
반면 부하직원 열심히 챙기는 사람은 대개 윗사람에게 불손하다.겉으로는정의와 민주주의를 부르짖고 권위를 혐오하는 것 같으나,실은 자신이 윗사람이 되지 못한 데 대한 분노를 숨기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자신은 영원한아웃사이더를 자처하며 항상 불평불만을 토로하지만 그럴듯한 대안을 제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들은 종종 ‘스스로 왕따’가 된 채 이유를 알 수 없는 피해의식에서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충족되지 않은 욕망 덕분에 상대적 박탈감도 유달리 크게 느낀다.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 윗사람에 대해 불성실로 저항하기도 한다.겉으로는 겸손함과 평등의식으로 포장하고 있으나 속으로는 권력욕과 오만함을 숨기고 있는 이들은 때로 소(小)영웅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옛말에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고 했다.지나치게 윗분을 잘 모시는 사람은 윗분의 입장에서도 경계할 일이다.아랫사람 무시하면서 윗분 섬기는 사람치고 자신의 욕심을 챙기지 않는 사람은 없다.지나치게 부하직원 돌보는 사람 역시 아랫사람의 입장에서도 조심할 일이다.
윗분에게는 불손하면서 아랫사람 돌보는 사람치고 자신의 욕망을 던져버린사람은 없다.지나친 사람 앞에서는 늘 이용당할 가능성이 있음을 경계해야할 것이다.
학생들이 내게 와서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한다.“교수님들이 총애하는 학생하고 친구들 사이에 인기있는 학생이 달라요”같은 제자들이 졸업 후에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상사들이 총애하는 사람치고 부하 직원들이 존경하는 사람 없어요”생각할수록 두려운 이야기이다.
그러고 보니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깊어만 가는 느낌이다.마음같아서야 윗분도 잘 모시고 아랫사람들도 잘 챙길 수 있다면야 금상첨화이겠으나,실상은그 어느 것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니,하나라도 확실히 할 수 있으면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까?성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언젠가 읽은 글 중에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는 귀절이 있었다.이분법에 대한 탁월한 조소(嘲笑)인 셈이다.그럼에도 나 역시 이분법적 사고의 편리함에 길들여져 있는가 보다.주위를 둘러보면 대개 두 부류의 사람이 보이니 말이다.하나는 윗분을 극진히 섬기는 사람들이요,다른 하나는 아랫사람을 열심히 챙기는 사람들로 나뉘는 것 같다.
물론 사람을 유형화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는 줄 알지만,복잡한 현상을 단순화하기에는 유형화만큼 좋은 무기도 없는 것 같기에 위험을 무릅써 보련다.윗분을 극진히 모시는 사람은 대개 아랫사람들에게 가혹하다.‘내가 윗분 모시는 것 잘 보고 너희들도 나를 이렇게 모셔라’고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이런 사람일수록 내용보다는 형식을 중히 여기며,위·아래 서열의식이 확실하다.때로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불안감을 과잉충성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윗분의 마음은 그렇게 잘 헤아리면서 아랫사람의 마음은 ‘나 몰라라’ 하는 이들은 종종 조직에서 ‘왕따’가 된다.한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들은자신이 ‘왕따’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윗분 역시 눈 앞의 진상에만눈이 어두워,자신을 극진히 섬기는 부하 직원이 ‘왕따’인 것을 눈치채지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 주위를 안타깝게 한다.
반면 부하직원 열심히 챙기는 사람은 대개 윗사람에게 불손하다.겉으로는정의와 민주주의를 부르짖고 권위를 혐오하는 것 같으나,실은 자신이 윗사람이 되지 못한 데 대한 분노를 숨기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자신은 영원한아웃사이더를 자처하며 항상 불평불만을 토로하지만 그럴듯한 대안을 제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들은 종종 ‘스스로 왕따’가 된 채 이유를 알 수 없는 피해의식에서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충족되지 않은 욕망 덕분에 상대적 박탈감도 유달리 크게 느낀다.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 윗사람에 대해 불성실로 저항하기도 한다.겉으로는 겸손함과 평등의식으로 포장하고 있으나 속으로는 권력욕과 오만함을 숨기고 있는 이들은 때로 소(小)영웅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옛말에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고 했다.지나치게 윗분을 잘 모시는 사람은 윗분의 입장에서도 경계할 일이다.아랫사람 무시하면서 윗분 섬기는 사람치고 자신의 욕심을 챙기지 않는 사람은 없다.지나치게 부하직원 돌보는 사람 역시 아랫사람의 입장에서도 조심할 일이다.
윗분에게는 불손하면서 아랫사람 돌보는 사람치고 자신의 욕망을 던져버린사람은 없다.지나친 사람 앞에서는 늘 이용당할 가능성이 있음을 경계해야할 것이다.
학생들이 내게 와서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한다.“교수님들이 총애하는 학생하고 친구들 사이에 인기있는 학생이 달라요”같은 제자들이 졸업 후에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상사들이 총애하는 사람치고 부하 직원들이 존경하는 사람 없어요”생각할수록 두려운 이야기이다.
그러고 보니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깊어만 가는 느낌이다.마음같아서야 윗분도 잘 모시고 아랫사람들도 잘 챙길 수 있다면야 금상첨화이겠으나,실상은그 어느 것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니,하나라도 확실히 할 수 있으면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까?성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1999-04-17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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