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쇠’가 트레이드 마크였던 鄭泰守전한보그룹총회장이 지난 4일 태도를 180도 바꾼 배경은 복합적이다. 국민회의는 ‘공식적’으로는 확실한 물증을 주요인으로 꼽는다.金元吉정책위의장은 “97년의 한보청문회에서도 ‘鄭전총회장이 300억원을 金泳三전대통령의 대선자금으로 건넸다’는 지적을 했었다”면서 이번에 대어(大魚)를낚은 게 우연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당시에는 금액만 대충 알았지만 이번에는 정치자금을 건넨 시기,장소,금액을 확실히 파악한 데다 수표번호까지 알았기 때문에 鄭전총회장도 부인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金의장은 “그때 문간까지 갔는데 확인하지 못한 게 억울해 계속 추적해왔다”면서 “2년간 정성을 들였다”는 말까지 했다. 그의 말대로 정권교체로 확실한 물증을 확보한 게 굳게 닫힌 말문을 연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국민회의는 청문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정권교체로 확실한 물증을 갖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이 요인 외에여권의 설득작업도 한몫을 했다.공소시효가지난 데다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직·간접적으로 전달했다.金元吉의장은 직접 鄭전총회장을 만나지는 않았지만 다른 의원들이 접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자민련 李健介의원은 鄭전총회장을 지난달 28일 직접 안양병원에서 만나 설득하기도 했다. 국민회의는 鄭전총회장의 3남인 鄭譜根전한보그룹회장과 처제를 연결통로로 활용했다.수표번호를 확보했다는 것을 알려 정치자금 제공사실을 인정하라는 뜻도 전했다. 鄭전총회장이 사업에 대한 미련 때문에 사실을 폭로했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그가 “3,000억원만 있으면 한보철강을 정상화시킬 수 있다”면서“내기를 해도 좋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친 것을 이런 맥락에서 풀이하기도 한다.鄭전총회장은 사실을 인정하면서 사면이나 병보석 등을 물론 기대했을 수도있다. 정치권에서는 빅딜설과 사전 교감설도 나돌지만 국민회의는 물론 부인하고있다.金의장은 “(이러한 오해를 받을까봐) 鄭전총회장을 면회한 적이 없다”면서 “근처에도 간 적이 없다”고 말했다.
1999-02-06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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