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9회)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9회)

임헌영 기자 기자
입력 1999-01-14 00:00
수정 1999-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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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음사에서 ‘한하운 시초’ 재판을 발행하자 관계당국은 예기치 않게 판매금지와 압수조치를 취했는데 그 사연인즉 이랬다.“세간에 커다란 물의와 비난을 자아낸 가운데 전국 각 서점에서 팔리고 있던 문제의 ‘한하운 시초’는 정부수립 이전 이미 좌익 선동서적이란 낙인을 찍었던 것으로서 동 서적의 재판발행에 즈음하여 당국의 태도가 자못 주목되어 오던 바 경남경찰국에서는 치안국의 명에 의하여 지난 8월 초순 이래예의 내사를 거듭해 오던 바 드디어 일제히 압수하였다고 하는데 앞으로도수사는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태양신문’ 53.8.24). 한하운이 시인으로 등단한 시기나 시집을 낸 것이 정부수립 이후인 1949년이란 점으로 볼 때 이 기사는 터무니없다.더구나 주간지 ‘신문의 신문’은 8월 1일자에서 그를 ‘문화 빨치산’으로낙인 찍어버려 악성 루머는 그가 유령인물로 문둥이로 위장해 좌익활동을 하고있다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하운’이란 호마저 국가 멸망의 저주를 상징하는 것으로 시 전체가 적기가를 닮았다는 비난이 돌출된 바로이런 시점에서 문제의 ‘서울신문’ 특종이 나가자 금새 ‘태양신문’이 조목조목 따져가며 한하운과 그 주변 인물들(이리 농림학교 동창생 K씨,옛 연인 M양 등)은 물론이고 시인 박거영(朴巨影),조영암(趙靈巖),작가 최태응(崔泰應)과 시집을 내준 정음사 최영해(崔暎海)사장까지 모두에게 좌익과 연관된 비밀을 밝히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민족적인 미움을 주자 -- 적기가 ‘한하운 시초’와 그 배후자]란 제목으로 1953년 11월 5∼8일까지 4회에 걸쳐 연재된 이 글의 필자는 이정선(李貞善) 평화신문 문화부장이었다.한하운같은 문둥이 서정시인을 투철한 빨치산 운동가로 분장시켜 현대 한국언론사에서 매카시즘의 한 표본이 된 이 글은 열정적인 반공의식으로 충만하여 시집 ‘한하운 시초’를 도저히 묵과할 수 없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정선에 의하면 “간 밤에 얼어서/ 손가락이 한마디/머리를 긁다가 땅위에 떨어진다”(‘손가락 한마디’)고 쓴 이유 조차도 “당국에 대하여 문둥이와 빨갱이를 판별 못하도록 하자는 농간이 있는 것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그는 한하운의 시 ‘데모’‘명동거리 1’ 등과 이병철의 ‘한하운 시초를 엮으면서’란 선자의 말 중 한 두 구절씩을 인용하여 “공산주의 프로파간디스트”로 짜맞춰 부각시켰다.물론 한하운을 발굴한 시인 이병철을 거론하여 이제 그가 월북하여 사라진자리에다 조영암을 동원하여 이병철이 했던 말을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다고꼬집으면서 한하운과 그 배후세력의 가차없는 수사를 촉구했다.이 글은 한걸음 더 나아가 정음사 최영해 사장이 서울신문 취체역(이사)이며,한하운의 시를 한국 대표시의 하나라고 소개한 ‘현대시 감상’의 저자 장만영은 서울신문 출판국장이란 사실까지 거론하여 은근히 서울신문 전체의좌경화 이미지를 덧칠해냈다. 한하운을 좌경분자로 보게 된 배경 설명에서 이정선은 “그 당시 필자와 ‘신문의 신문’ 발행인 최흥조(崔興朝)씨와 그리고 아동문학가 김영일(金英一)등 세사람”이 모여 “‘한하운 시초’의 발간은 문화빨치산의 남침”이며,더구나 이병철의 글 내용을 살짝 고쳐 조영암의 이름으로 쓴 ‘후기’가 “민족적인 것으로 캄푸라쥬하여 전국 서점에 배본하고 있음은 틀림없는 신각도의 북한괴뢰들의 대남공작으로 간파하여야 한다”는 견해에 일치했었다고역설했다. 여기까지의 사건 개요를 요약하면 이렇다.한하운 시집 재판이 나온 게 6월,반공투사 셋은 잽싸게 각기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신문의 신문’(최흥조),‘태양신문’(김영일은 당시 태양신문 발행 주간지 ‘소년태양’에 근무),‘평화신문’을 통해 여론화 했는데 중과부적인 ‘서울신문’은 특종을 한지 3일만에 두 간부의 목만 억울하게 자르고 말았다.바로 그날 관계당국은 한하운을 본격 수사한다고 발표(11.20.실은 이미 11월 초부터 내사)했고,몇몇 언론의 고발에 국가기관이 본격적으로 개입하자 관망하던 언론들도 일제히 수사착수 기사를 쓰게 돼 이제 거지 한하운의 운명은 수사권에 당그라니 매달리게 되었다.

1999-01-14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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