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6도의 추위에 어둠을 뚫고 판문점으로 출퇴근하는 공무원들이 있다.통일부 소속의 鄭應采과장을 비롯한 5명의 남북 연락관들이다. 연락관과 통신·보일러 담당 기능직원 등 30여명은 아침 7시쯤 광화문에서판문점행 통근버스에 몸을 실는다.일산이나 분당같은 수도권 지역에 사는 직원들은 6시도 안돼 세수만 하고 집을 나서야하는 이른바 ‘새벽별 보기운동’을 한다. 판문점이 서울보다 5도 이상 추운 탓에 중무장을 하고 판문점에 도착하면오전 9시 직전.鄭과장 일행은 남북 적십자사 연락사무소 전화가 잘 돼는지를 시험하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한다.남북간 대화가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절차인 셈이다. 오후 4시면 남북 합의에 따라 우리측은 서울로,북한측은 개성으로 철수해야 한다.철수 전 북한측에 전화를 걸어 업무마감을 알리는 일로 하루일을 마친다. 연락관들은 최전방에서 근무하는 중앙 정부 공무원들인 셈이다.수은주만큼이나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그나마 유지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이다.북한과 통화 확인전화를 주고받은 것은 지난해 648차례. 남북 연락관들이 중립국감독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나 서신을 교환한 것은 32회이고,전화통지문 전달이 41회.鄭周永 현대그룹명예회장의 북한 방문과 귀환 절차 등을 협의한 것도 그들 몫이다. 연락관들의 실제 소속은 통일부이지만,대외직함은 적십자사 판문점 연락책임자.鄭과장은 불과 몇년 전만 해도 남북 당국간 연락사무소 소장이었지만이제는 아니다.‘金日成 조문파동’으로 북한이 일방적으로 당국간 연락사무소를 폐쇄한 탓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북한 연락관들과 만난 것은 金日成주석 사망 이틀 뒤인 94년7월10일.金주석 유고로 정상회담이 무기 연기된다는 통보를 받았다.그뒤북한은 조문파동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연락사무소 폐쇄를 통보했고,얼마 뒤에는 전화마저 끊겨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남북 연락관 생활 27년에다 평양을 7차례 방문한 ‘남북관계의 산증인’인鄭과장의 올해 소원은 당국간 전화가 ‘때르릉’ 울리는 것이다.연락사무소전화는 남북한 당국간 대화의 첫 시작이기 때문에 그의 기다림은 더욱 간절할 수밖에 없다. 당국자간 언제 어디서 만나자는 통보가 당국간 연락사무소 전화로 이뤄지기 때문이다.그는 “남북간 대화가 단절돼 있어 연락관으로서 맥이 빠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새해들어 당국간 대화재개 가능성이 언론에 보도되자 鄭과장이 직통전화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많아졌다.“바쁘게 일하고 싶습니다”는 게 鄭과장의 올해 바람이다.朴政賢 jhpark@
1999-01-1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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