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軍政 출판검열 규정 위반 1호/47년 2월 출판… 수록詩 ‘깃발을 내리자’ 문제삼아/“군정반대·불온한 선동” 규정 출판사에 삭제 지시/각계 잇단 항의성명에 해당詩 빼고 출판 결정 내려
질풍노도의 시대에도 시는 존재하는가. 자료에 의하면 미군정기 3년동안 발간된 시집은 90여종. 이중 문학사적으로 검증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불과 50여종이나 될까.
식민통치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구호와는 달리 미군정은 일제하의 각종 규제에 못지않게 꽤나 까탈스러운 출판검열조항들을 설정했다. 1946년 5월4일 공포된 법령 제72호는 출판물 검열의 기준이기도 했는데,제1조는 ‘군정위반에 대한 범죄는 1945년 9월7일부 태평양 미국군총사령부 포고 제2호 또는 현금까지 공포된 법령외 좌와 여히 규정함’이란 서두아래 82개 항목의 범법사항을 예시하고 있다.
‘전염화류병을 가진 부녀가 주둔군인에 대한 성관계의 유혹’같은 항목에 이르면 화류병이 없는 부녀자는 아무래도 좋다는 해석부터, 대체 그 시절에 적극적인 성적 유혹으로 윤리의식을 혼란시킨 장본인이 어느 쪽이었을까란 어리석은 의문도 생긴다.
이렇듯 까다로운 군정의 검열에서도 합법적으로 출판되었던 시집이 정부수립 이후 납월북 문인이란 이유로 금지조처가 내려진 게 30여종에 이른다. 덧부치자면 미군정 아래서 시집이 판매금지당한 것은 임화의 ‘찬가’가 그 제1호이자 마지막이었다.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연극 영화인이요 운동가이며 혁명가에다 조직가,경영인이기도 했던 임화는 8.15 직후 가장 강력한 문학단체 결성에 성공한 뒤 정치적으로는 분명히 북로당이 아닌 남로당 노선을 지지했다.
유진오가 ‘인민의 계관시인’이었다면 임화는 ‘정당의 계관시인’역을 충실히 이행했다.
시집 ‘찬가’는 1947년 2월10일 백양사에서 초판이 발간되어 관례대로 공보부에 납본했었는데 그로부터 두달이 지난 3월말경 말썽이 나기 시작했다. 이유는 이 시집 51쪽에 실린 ‘깃발을 내리자’라는 시의 불온성이었다.
‘노름꾼과 강도를/잡던 손이/위대한 혁명가의/소매를 쥐려는/욕된 하늘에/무슨 깃발이/날리고 있느냐//동포여!/일제이/깃발을 내리자’ 고 화두를 잡은 임화는 이 시에서 ‘가난한 동포의/주머니를 노리는/외국 상관(商館)’과 ‘살인의 자유와/약탈의 신성이/주야로 방송되는’ 것이 당대적 현실이라며 후렴으로 ‘동포여/일제이/깃발을 내리자’ 고 세번이나 반복한다.
문제의 시가 처음 발표된 것은 ‘현대일보’ 1946년 5월20일자 제2쪽이었다. 기존 논문이나 자료들은 이 시가 마치 19일에 발표된 것처럼 쓰고 있는데,그것은 발표 당시 ‘1946.5.19’라는 시 제작 날짜를 명기한데서 연유한 듯 싶다.
그러니까 임화는 이 시를 쓰자마자 당대의 대표적 이론가의 한사람이자 문학평론가였던 박치우(朴致祐)가 발행인이고 작가 이태준이 주간으로 있던 ‘현대일보’(7월1일자로 주필 겸 편집국장에 평론가 이원조,정리위원에 평론가 김병규로 바뀜)로 갖다주었고,신문사측에서는 기사문보다 한 급수 더 큰 활자로 보기좋게 제2면 가운데에 상자로 게재했다.
이 작품은 시집 ‘찬가’에 실린 것을 그대로 인용,연구하고 있는데,원문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원문에는 제목 ‘旗ㅅ 발을 내리자!’에서 보듯이 느낌표가 붙어 있고,‘가난한 동포의/주머니를 노리는/외국 商館의/늙은 종(奴隸)들이’로 되어있으나 시집에서는 괄호 안의 ‘노예(奴隸)’가 빠져있다.
이 시집에는 제1부에 8·15 이후의 작품 15편,2부에는 첫시집 ‘현해탄’(1938)이후 일제하에 쓴 7편이 실려있다. 5월24일 수도관구 경찰청 사찰과가 시집을 출판한 백양사 사장을 호출하여 문제의 시 삭제를 지시하자 이에 항의하는 성명서가 잇따랐다.
‘공보부에 납본된 츨판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군정 반대나 불온한 선동이나 풍기를 교란하는 내용일 때에는 경찰은 적발하여 검찰청으로 고발할 수 있는 것이다’는 것이 기자단을 향한 장택상 경찰청장의 해명이었다.
7월18일 시인과 발행인은 경찰청으로부터 검찰로 불구속 송치되었는데,8월10일 문제의 시만 삭제하고 출판해도 좋다는 결정이 내려지는 것으로 시집 ‘찬가’필화사건은 형식적으로 끝나버렸다.<任軒永 중앙대 교수·문학평론가>
질풍노도의 시대에도 시는 존재하는가. 자료에 의하면 미군정기 3년동안 발간된 시집은 90여종. 이중 문학사적으로 검증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불과 50여종이나 될까.
식민통치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구호와는 달리 미군정은 일제하의 각종 규제에 못지않게 꽤나 까탈스러운 출판검열조항들을 설정했다. 1946년 5월4일 공포된 법령 제72호는 출판물 검열의 기준이기도 했는데,제1조는 ‘군정위반에 대한 범죄는 1945년 9월7일부 태평양 미국군총사령부 포고 제2호 또는 현금까지 공포된 법령외 좌와 여히 규정함’이란 서두아래 82개 항목의 범법사항을 예시하고 있다.
‘전염화류병을 가진 부녀가 주둔군인에 대한 성관계의 유혹’같은 항목에 이르면 화류병이 없는 부녀자는 아무래도 좋다는 해석부터, 대체 그 시절에 적극적인 성적 유혹으로 윤리의식을 혼란시킨 장본인이 어느 쪽이었을까란 어리석은 의문도 생긴다.
이렇듯 까다로운 군정의 검열에서도 합법적으로 출판되었던 시집이 정부수립 이후 납월북 문인이란 이유로 금지조처가 내려진 게 30여종에 이른다. 덧부치자면 미군정 아래서 시집이 판매금지당한 것은 임화의 ‘찬가’가 그 제1호이자 마지막이었다.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연극 영화인이요 운동가이며 혁명가에다 조직가,경영인이기도 했던 임화는 8.15 직후 가장 강력한 문학단체 결성에 성공한 뒤 정치적으로는 분명히 북로당이 아닌 남로당 노선을 지지했다.
유진오가 ‘인민의 계관시인’이었다면 임화는 ‘정당의 계관시인’역을 충실히 이행했다.
시집 ‘찬가’는 1947년 2월10일 백양사에서 초판이 발간되어 관례대로 공보부에 납본했었는데 그로부터 두달이 지난 3월말경 말썽이 나기 시작했다. 이유는 이 시집 51쪽에 실린 ‘깃발을 내리자’라는 시의 불온성이었다.
‘노름꾼과 강도를/잡던 손이/위대한 혁명가의/소매를 쥐려는/욕된 하늘에/무슨 깃발이/날리고 있느냐//동포여!/일제이/깃발을 내리자’ 고 화두를 잡은 임화는 이 시에서 ‘가난한 동포의/주머니를 노리는/외국 상관(商館)’과 ‘살인의 자유와/약탈의 신성이/주야로 방송되는’ 것이 당대적 현실이라며 후렴으로 ‘동포여/일제이/깃발을 내리자’ 고 세번이나 반복한다.
문제의 시가 처음 발표된 것은 ‘현대일보’ 1946년 5월20일자 제2쪽이었다. 기존 논문이나 자료들은 이 시가 마치 19일에 발표된 것처럼 쓰고 있는데,그것은 발표 당시 ‘1946.5.19’라는 시 제작 날짜를 명기한데서 연유한 듯 싶다.
그러니까 임화는 이 시를 쓰자마자 당대의 대표적 이론가의 한사람이자 문학평론가였던 박치우(朴致祐)가 발행인이고 작가 이태준이 주간으로 있던 ‘현대일보’(7월1일자로 주필 겸 편집국장에 평론가 이원조,정리위원에 평론가 김병규로 바뀜)로 갖다주었고,신문사측에서는 기사문보다 한 급수 더 큰 활자로 보기좋게 제2면 가운데에 상자로 게재했다.
이 작품은 시집 ‘찬가’에 실린 것을 그대로 인용,연구하고 있는데,원문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원문에는 제목 ‘旗ㅅ 발을 내리자!’에서 보듯이 느낌표가 붙어 있고,‘가난한 동포의/주머니를 노리는/외국 商館의/늙은 종(奴隸)들이’로 되어있으나 시집에서는 괄호 안의 ‘노예(奴隸)’가 빠져있다.
이 시집에는 제1부에 8·15 이후의 작품 15편,2부에는 첫시집 ‘현해탄’(1938)이후 일제하에 쓴 7편이 실려있다. 5월24일 수도관구 경찰청 사찰과가 시집을 출판한 백양사 사장을 호출하여 문제의 시 삭제를 지시하자 이에 항의하는 성명서가 잇따랐다.
‘공보부에 납본된 츨판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군정 반대나 불온한 선동이나 풍기를 교란하는 내용일 때에는 경찰은 적발하여 검찰청으로 고발할 수 있는 것이다’는 것이 기자단을 향한 장택상 경찰청장의 해명이었다.
7월18일 시인과 발행인은 경찰청으로부터 검찰로 불구속 송치되었는데,8월10일 문제의 시만 삭제하고 출판해도 좋다는 결정이 내려지는 것으로 시집 ‘찬가’필화사건은 형식적으로 끝나버렸다.<任軒永 중앙대 교수·문학평론가>
1998-11-25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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