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예쁘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박갑천 칼럼)

“너무 예쁘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박갑천 칼럼)

박갑천 기자 기자
입력 1998-11-02 00:00
수정 1998-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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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내려가면 ‘여간’을 ‘매우’ ‘아주’ ‘대단히’라는 뜻으로 쓴다.“누구 누구네 신랑 여간 잘났더라” “그 사람 주먹 여간 세지” 와 같이.

그렇지만 표준말 ‘여간’은 뒤에 ‘아니다’ ‘아니하다’ 따위의 부정하는 말을 달고 쓰이게 돼있다.“오늘은 여간 쌀쌀한 날씨가 아니야” “헤어지게 되니 여간 섭섭하지 않군 그래”하는 식으로.그런데 신문 제목에서 ‘수사망 죄어들자 정치권 안절부절’ 같은 표현을 보면서는 남쪽지방 ‘여간’의 쓰임새와 비슷하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안절부절’ 또한 부정하는 뜻의 ‘못하다’를 달고서 “안절부절못하다”고 해야만 말이 되기 때문이다.‘으로하여금’도 그렇다.그 다음에 ‘하게 하다’(하도록하다)가 뒤따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글들을 더러 본다.

근자에 들어 ‘너무’라는 말의 쓰임이 마치 남쪽지방 ‘여간’과 같이 잘못돼 간다.

이제는 많이 일반화해버린 가운데 잘못되었다는 생각에서도 멀어진 상황이다.‘너무’는 ‘넘다’의 줄기(어간) ‘넘’에 ‘우’라는 뒷가지(접미사)가붙어서 이루어진 어찌씨(부사)이다.‘잦다’의 ‘잦’에 ‘우’가 붙은 ‘잦우→자주’,‘밭다’의 ‘밭’에 ‘우’가 붙은 ‘밭우→바투’… 따위와 같은 생겨남의 말이다.

이 ‘너무’라는 말도 “그래서는 안되는 건데 지나치다”는 부정의 뜻을 달고 쓰인다.“이번 시험문제는 너무 어렵더라” “노력에 비해 월급은 너무 적은 거지”와 같이.어렵지 않아야 할 시험문제를 생각하면서,또 적지않아야 할 월급을 생각하면서 기대에 어긋난다는 뜻으로 ‘너무’를 쓰고 있다.이런 쓰임은 옳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쓰임은 어떤가.“그 아이는 공부를 너무 잘한다” “순이는 너무 예쁘다”.그 아이는 공부를 잘못해야 옳은데 지나치게 잘해서 탈이고,순이는 예쁘지 않아야 할 처지인데 예뻐서 잘못되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 이 문장이다.그것이 본디의 ‘너무’라는 뜻이다.한데 요즈음은 “아주(매우) 잘한다” “참으로(대단히) 예쁘다”는 뜻으로 이렇게들 쓰고 있다.또 그를 강조하려면서는 ‘너무너무’라고도 한다.



‘염치’라는 말이 있다.예절을갖추어야 할 사람으로서의 중요한 덕목이다.그런데 염치없는 사람이 많아짐에 따라 ‘없다’를 뺀 채 ‘염치→얌치→얌체’로써 염치없는 사람을 가리키게 된다.정반대 개념을 이르는 말의 변절(變節)이라고나 할까.추세를 보아하니 ‘너무’도 그 뒤를 밟는 양하다.<칼럼니스트>
1998-11-02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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