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존 실버 박사는 윤리학자,법철학자,그리고 권위있는 칸트철학 연구자다. 미국 트리니티 대학교를 나와 예일 대학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예일 대학교,텍사스 대학교에서 교수를 지냈고,71년 보스턴 대학교 총장이 되었다. 다른 대학 출신이 총장으로 왔다고 누구도 트집잡지 않았다.
96년까지 26년동안 보스턴 대학교 총장으로 있었는데,그가 너무 오래 그자리에 있다고 누구도 헐뜯지 않았다. 그는 총장직을 떠난 뒤 이사장이 되었으면서도 교수로서 전공분야의 강의를 맡고 있다.
○美 대학사회 통렬히 비난
그는 촘스키 같은 정치적으로 좌파적인 교수들을 맹공했다. 이는 진보적인 분위기가 지배하던 대학사회에서 인기가 없는 행동이었다.그가 총장직에 있으면서 89년 ‘직사’(直射)라는 책을 써서 미국사회와 미국 대학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했다.누구도 이런 처신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는 미국에서도 별난 대학교 총장이었다. 그의 글은 직설적이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좌충우돌로 자기 주장이나 비판을 폈다. 대학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역설했으며 이를 실천에 옮겼다. 총장직에 있는 동안 보스턴 대학교의 재정을 안정시키고 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그는 교사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줄곧 주장했다. 교사를 양성하는 미국의 교육대학원들은 인기가 없어 지원자가 적어지자 합격기준을 자꾸 낮추었다. 이 때문에 우수한 학생은 교육에 뜻이 있어도 입학하려 들지 않았다.
실버총장은 보스턴 대학교 교육대학원의 합격기준을 놀랄 정도로 올려버렸다. 당연히 정원을 채울 수 없었다. 이런 엉뚱한 조치를 정부의 누구도 나무라지 않았다. 그의 과감한 시도는 성공한다. 우수한 학생을 모은다는 소문이 나자 몇 해 지나지 않아 성적좋은 지원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는 교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훌륭한 연구업적을 남기는 교수보다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교수가 더 중요하다. 신입생들을 경험없는 조교들에게 내맡겨서는 안된다. 강의실은 비밀스런 종교의식이 거행되는 곳이 아니다. 강의는 공개되어 동료교수와 학생들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가 지적한 교수사회의 병폐를 보자. 학장이나 총장이 의욕적으로 개혁하려 하면 이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교수들이 기어코 몰아낸다. 새로운 학문적 견해를 가진 젊은 교수에게 늙은 교수들이 자리를 주려 하지 않는다. 한번 전임이 되고 나면 나태해지는 교수들이 있다. 강의하거나 학생을 지도하기보다는 학교 밖의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자문담당이 되기를 더 좋아하는 교수들이 많다.
○오른손 장애 딛고 성공
그곳도 교수사회는 한국과 비슷한 구석이 있구나 싶은데,그래도 실버박사 같은 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만은 크게 다른 것 같다.무엇보다도 정부가 대학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
나는 실버박사가 총장일 때 그의 저서에 서명을 받으려고 하버드 대학교 앞 서점에서 만난 일이 있다. 그는 왼손으로 서명해준 뒤 또 왼손으로 악수를 청했다. 오른손은 없었다. 손 하나가 없다고 해서 대학교 총장직을 수행하는 데 아무런 지장은 없겠지만 그때 놀라움은 컸다.
궁금하기는 하지만 오른손이 왜 없느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전쟁터에 나가서 다쳤다면 용사의 표상이다. 어려서부터 그랬다면 어려움을 극복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편집국 부국장 pensanto@seoul.co.kr>
96년까지 26년동안 보스턴 대학교 총장으로 있었는데,그가 너무 오래 그자리에 있다고 누구도 헐뜯지 않았다. 그는 총장직을 떠난 뒤 이사장이 되었으면서도 교수로서 전공분야의 강의를 맡고 있다.
○美 대학사회 통렬히 비난
그는 촘스키 같은 정치적으로 좌파적인 교수들을 맹공했다. 이는 진보적인 분위기가 지배하던 대학사회에서 인기가 없는 행동이었다.그가 총장직에 있으면서 89년 ‘직사’(直射)라는 책을 써서 미국사회와 미국 대학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했다.누구도 이런 처신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는 미국에서도 별난 대학교 총장이었다. 그의 글은 직설적이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좌충우돌로 자기 주장이나 비판을 폈다. 대학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역설했으며 이를 실천에 옮겼다. 총장직에 있는 동안 보스턴 대학교의 재정을 안정시키고 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그는 교사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줄곧 주장했다. 교사를 양성하는 미국의 교육대학원들은 인기가 없어 지원자가 적어지자 합격기준을 자꾸 낮추었다. 이 때문에 우수한 학생은 교육에 뜻이 있어도 입학하려 들지 않았다.
실버총장은 보스턴 대학교 교육대학원의 합격기준을 놀랄 정도로 올려버렸다. 당연히 정원을 채울 수 없었다. 이런 엉뚱한 조치를 정부의 누구도 나무라지 않았다. 그의 과감한 시도는 성공한다. 우수한 학생을 모은다는 소문이 나자 몇 해 지나지 않아 성적좋은 지원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는 교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훌륭한 연구업적을 남기는 교수보다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교수가 더 중요하다. 신입생들을 경험없는 조교들에게 내맡겨서는 안된다. 강의실은 비밀스런 종교의식이 거행되는 곳이 아니다. 강의는 공개되어 동료교수와 학생들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가 지적한 교수사회의 병폐를 보자. 학장이나 총장이 의욕적으로 개혁하려 하면 이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교수들이 기어코 몰아낸다. 새로운 학문적 견해를 가진 젊은 교수에게 늙은 교수들이 자리를 주려 하지 않는다. 한번 전임이 되고 나면 나태해지는 교수들이 있다. 강의하거나 학생을 지도하기보다는 학교 밖의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자문담당이 되기를 더 좋아하는 교수들이 많다.
○오른손 장애 딛고 성공
그곳도 교수사회는 한국과 비슷한 구석이 있구나 싶은데,그래도 실버박사 같은 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만은 크게 다른 것 같다.무엇보다도 정부가 대학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
나는 실버박사가 총장일 때 그의 저서에 서명을 받으려고 하버드 대학교 앞 서점에서 만난 일이 있다. 그는 왼손으로 서명해준 뒤 또 왼손으로 악수를 청했다. 오른손은 없었다. 손 하나가 없다고 해서 대학교 총장직을 수행하는 데 아무런 지장은 없겠지만 그때 놀라움은 컸다.
궁금하기는 하지만 오른손이 왜 없느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전쟁터에 나가서 다쳤다면 용사의 표상이다. 어려서부터 그랬다면 어려움을 극복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편집국 부국장 pensanto@seoul.co.kr>
1998-09-11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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