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우수성은 인정
어제 4월 10일은 세종의 생일이었다.세종은 1397년 4월 10일 태어나서 1450년 2월 17일 세상을 떠났다.겨우 53년 남짓 결코 길지 않은 일생에 그는 너무나 훌륭한 일을 많이 했고,그 가운데 가장 뚜렷한 업적은 아마 한글 창제일 것이다.
한글이 뛰어난 글자라는 사실은 세계가 인정하는 일이다.우리 한국인끼리 수근대는 소리가 아니라는 말이다.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내가 여러해 전에 찾아갔던 일본 대판(大阪:‘오사카’라고 쓰지 않는 이유는 뒤에서 설명)에 있는 ‘민족박물관’세계 언어 전시실에는 한글을“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고 한 설명이 있었다.사실 세상 사람들이 한 글자만을 남기고 나머지 글자는 모두 없애야 한다면,당연히 우리 한글을 남겨야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한글만 있으면 세상의 어느 나라 말도 표기하는데 그리 무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예를 들면 서양 이름을 한글로 표기해 발음해도 무리가 없고,일본과 중국의 인명 지명도 한글로 표기해서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다른 측면에 눈을 돌려야 한다.엊그제 나는 올더스헉슬리의 ‘놀라운 신세계’란 책을 다시 훑어 보게 되었다.공상과학 소설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의 제2장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폴란드말이란 걸 아냐?”“아 그건 사어(死語)지.”“프랑스말과 독일말이나 마찬가지로…”라고 다른 학생이 덧붙였다.>기원 2100년 이후쯤을 무대로 그려진 이 소설에서 폴란드말은 프랑스어,독일어와 함께 없어진 언어가 되어 있는 것이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컴퓨터가 세상을 통일하고 있는 지금 추세가 지속되면 앞으로 몇 세기 안으로 서양 언어는 모두 영어 중심으로 통일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이 그것이다.아직 세상에는 수많은 언어가 살아있지만,세계화가 진행되어 나라 사이의 경계가 없어질수록 이들 살아 있는 말들은 자꾸 위축당할 수 밖에 없다.물론 사어(死語)가 되기 전에 그것들은 한참 동안 지방어(地方語)로 살아 갈 수는 있을 것이다.유럽을 여행하노라면 영어만 가지고도 웬만큼 불편이 없어져 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이미 유럽의대부분 언어가 지방어로 전락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세계화와 언어의 사멸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다.세계는 자꾸 좁아지고 있고,그것은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자꾸만 영어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것을 어느 누구도 어쩔 수가없다.그러면 동양에서는 어떻게 될까? 아마 중국어가 그런대로 상당 기간 동안 명맥을 유지할 것이다.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한자가 중요한 의사 소통수단으로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 살아 남을 수 밖에 없을 것같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몇 세기 안으로 이 세상은 영어와 중국어만을 중심 언어로 한 채,다른 언어는 지방어와 사어로 떨어져 갈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그렇다면 그런 새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우리 자세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두 가지 대안이 있다.첫째 방법은 문자 만이라도 한글을 세계 공통의 것으로 만들고 영자나 한자 따위를 없애도록 노력하는 길이다.그러나 누가 생각해도 이것은 가망이 없는 일이다.그렇다면 둘째 대안은 무엇인가? 영자와 한자를 빨리 배우고 사용하는 수 밖에 없다.우리가 그리도 사랑하는한글은 지방어의 문자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세종 탄신일의 슬픈 역설
그러니까 21세기의 한국인은 당연히 한글은 알아야 하지만,그 밖에 영어와 중국어(적어도 한자)를 알아야 살아가기 편할 것같다는 말이다.
생일 맞은 세종 임금께는 미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하지만 어쩌랴? 세종도 잘 이해할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시변(時變)이란 그때나 이제나 사람 사는 이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오죽하면 옛 사람들은 ‘군자표변’(君子豹變)이란 말까지 했을까? 일제 때 우리 한글을 마음대로 쓰지도 못했던 서러움을 오늘에 연장해서 득될 것이 하나도 없다.일제 때에는 한글 사랑하는 것이 애국의 길이었지만,지금 한글 쓴다고 누가 감방에 데려갈 시대는 아니지 않은가? 한글만을 너무 사랑하던 태도를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세상이 바뀌는데 한글만 가지고 세상을 살기란 이제는 그른 일이다.
○한글만으로 살기엔 벅차
영자와 한자를 써서 한국인의 언어 생활은 더욱 다채로워질 수도 있다.또 그것이 결국 2100년대 이후의 문자 생활을 준비해가는 옳은 태도일 수밖에 없다.우리 땅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한,중국과 일본이 쓰는 한자를 우리만 쓰지 않고 버티기란 불가능하다.한글은 세상에 더없이 훌륭한 글자지만,한글만으로 살아갈 수가 없을 터이니 이를 어쩌겠는가? 그래서 나는 중국과 일본의 인명과 지명은 우리 발음대로 표기한다.이토 히로부미가 아니라 이등박문(伊藤博文)이며,강택민(江澤民)과 주용기(朱鎔基)지 장쩌민과 주룽지가 아니다.‘장쩌민’과 ‘주룽지’란 내게는 ‘짜장면’과 ‘누룽지’를 연상시킬 따름이다.
어제 4월 10일은 세종의 생일이었다.세종은 1397년 4월 10일 태어나서 1450년 2월 17일 세상을 떠났다.겨우 53년 남짓 결코 길지 않은 일생에 그는 너무나 훌륭한 일을 많이 했고,그 가운데 가장 뚜렷한 업적은 아마 한글 창제일 것이다.
한글이 뛰어난 글자라는 사실은 세계가 인정하는 일이다.우리 한국인끼리 수근대는 소리가 아니라는 말이다.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내가 여러해 전에 찾아갔던 일본 대판(大阪:‘오사카’라고 쓰지 않는 이유는 뒤에서 설명)에 있는 ‘민족박물관’세계 언어 전시실에는 한글을“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고 한 설명이 있었다.사실 세상 사람들이 한 글자만을 남기고 나머지 글자는 모두 없애야 한다면,당연히 우리 한글을 남겨야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한글만 있으면 세상의 어느 나라 말도 표기하는데 그리 무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예를 들면 서양 이름을 한글로 표기해 발음해도 무리가 없고,일본과 중국의 인명 지명도 한글로 표기해서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다른 측면에 눈을 돌려야 한다.엊그제 나는 올더스헉슬리의 ‘놀라운 신세계’란 책을 다시 훑어 보게 되었다.공상과학 소설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의 제2장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폴란드말이란 걸 아냐?”“아 그건 사어(死語)지.”“프랑스말과 독일말이나 마찬가지로…”라고 다른 학생이 덧붙였다.>기원 2100년 이후쯤을 무대로 그려진 이 소설에서 폴란드말은 프랑스어,독일어와 함께 없어진 언어가 되어 있는 것이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컴퓨터가 세상을 통일하고 있는 지금 추세가 지속되면 앞으로 몇 세기 안으로 서양 언어는 모두 영어 중심으로 통일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이 그것이다.아직 세상에는 수많은 언어가 살아있지만,세계화가 진행되어 나라 사이의 경계가 없어질수록 이들 살아 있는 말들은 자꾸 위축당할 수 밖에 없다.물론 사어(死語)가 되기 전에 그것들은 한참 동안 지방어(地方語)로 살아 갈 수는 있을 것이다.유럽을 여행하노라면 영어만 가지고도 웬만큼 불편이 없어져 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이미 유럽의대부분 언어가 지방어로 전락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세계화와 언어의 사멸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다.세계는 자꾸 좁아지고 있고,그것은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자꾸만 영어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것을 어느 누구도 어쩔 수가없다.그러면 동양에서는 어떻게 될까? 아마 중국어가 그런대로 상당 기간 동안 명맥을 유지할 것이다.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한자가 중요한 의사 소통수단으로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 살아 남을 수 밖에 없을 것같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몇 세기 안으로 이 세상은 영어와 중국어만을 중심 언어로 한 채,다른 언어는 지방어와 사어로 떨어져 갈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그렇다면 그런 새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우리 자세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두 가지 대안이 있다.첫째 방법은 문자 만이라도 한글을 세계 공통의 것으로 만들고 영자나 한자 따위를 없애도록 노력하는 길이다.그러나 누가 생각해도 이것은 가망이 없는 일이다.그렇다면 둘째 대안은 무엇인가? 영자와 한자를 빨리 배우고 사용하는 수 밖에 없다.우리가 그리도 사랑하는한글은 지방어의 문자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세종 탄신일의 슬픈 역설
그러니까 21세기의 한국인은 당연히 한글은 알아야 하지만,그 밖에 영어와 중국어(적어도 한자)를 알아야 살아가기 편할 것같다는 말이다.
생일 맞은 세종 임금께는 미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하지만 어쩌랴? 세종도 잘 이해할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시변(時變)이란 그때나 이제나 사람 사는 이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오죽하면 옛 사람들은 ‘군자표변’(君子豹變)이란 말까지 했을까? 일제 때 우리 한글을 마음대로 쓰지도 못했던 서러움을 오늘에 연장해서 득될 것이 하나도 없다.일제 때에는 한글 사랑하는 것이 애국의 길이었지만,지금 한글 쓴다고 누가 감방에 데려갈 시대는 아니지 않은가? 한글만을 너무 사랑하던 태도를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세상이 바뀌는데 한글만 가지고 세상을 살기란 이제는 그른 일이다.
○한글만으로 살기엔 벅차
영자와 한자를 써서 한국인의 언어 생활은 더욱 다채로워질 수도 있다.또 그것이 결국 2100년대 이후의 문자 생활을 준비해가는 옳은 태도일 수밖에 없다.우리 땅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한,중국과 일본이 쓰는 한자를 우리만 쓰지 않고 버티기란 불가능하다.한글은 세상에 더없이 훌륭한 글자지만,한글만으로 살아갈 수가 없을 터이니 이를 어쩌겠는가? 그래서 나는 중국과 일본의 인명과 지명은 우리 발음대로 표기한다.이토 히로부미가 아니라 이등박문(伊藤博文)이며,강택민(江澤民)과 주용기(朱鎔基)지 장쩌민과 주룽지가 아니다.‘장쩌민’과 ‘주룽지’란 내게는 ‘짜장면’과 ‘누룽지’를 연상시킬 따름이다.
1998-04-11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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