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과 우편엽서/이갑수 시인·민음사 편집국장(굄돌)

반야심경과 우편엽서/이갑수 시인·민음사 편집국장(굄돌)

이갑수 기자 기자
입력 1998-02-07 00:00
수정 1998-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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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잊고 살지만 처음 사회에 나왔을 때,회사에 출근하여 처음 한 행동은 우편엽서에 반야바라밀다심경을 빼곡이 정서하는 것이었다.그 의미는 제대로 모른 채 260자의 한문을 정서하고 나면 마음의 때가 벗겨지고 한순간이나마 마음이 풍족해지는 기분이었다.그리고 여시아문을 흉내내어 여시아기라고 박은 뒤 나를 아는 분들께 우편엽서를 그대로 보냈다.

나의 엽서를 받은 분들 중에서는 우연히 만날 기회가 있으면 불교에 아주 조예가 깊은 것으로 물어와 내심 당황하기도 하였다.하지만 그때까지 나의 불교지식이란 입문 수준의 서적 몇권을 읽은 게 고작 전부였을 뿐이다.당시이를 처음 시작할 때는 독서백편 의자현이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일년만 계속 하면 반야심경의 오묘한 맛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으리란 얄팍한 기대도 했었다.

무엇 하나 이루어 놓은 게 없고 거대하게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한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초라한 심정이 나를 지배할 때,반야심경 쓰기는 내게 큰 위안이었고 그나마 나의 중심을 흐트리지 않는 힘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번잡한 일과와 숨가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잘 쓰지도 못하는 한자를 더듬더듬 짚어나갔던 경험은 내 지난 기억의 갈피에서 반지처럼 반짝거린다.

오늘 내 주위에도 겨울 날씨만큼이나 차가운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사회에 처음 진출할 때의 개인적 어려움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이다.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생각해야 할 일은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각자 고난을 헤쳐가는 방법은 다르겠지만 나는 당장 내일부터 반야심경을 다시 쓰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그리하여 불안해진 내 마음의 끈을 다시 조이는 한편,나만큼이나 우울한 심정으로 식구들을 바라볼 벗들에게도 반야심경이 적힌 엽서를 보내 한 자투리의 명상이라도 할 시간을 줄 작정이다.

1998-02-07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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