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카파토키아 암굴 유적(세계 문화유산 순례:59)

터키 카파토키아 암굴 유적(세계 문화유산 순례:59)

이희수 기자 기자
입력 1998-01-26 00:00
수정 1998-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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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굴 미로속 2만명 살던 지하도시/화산암 뚫고 깎아 거주공간·교회·방앗간·축사 완비/땅속 8층까지 안내… 초기 기독교인의 피난지 추정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남동쪽으로 4시간을 달리면 지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자연경관이 나타난다.카파도키아로 알려진 석굴도시인데 그 중심지가 괴뢰메 마을이다.깔때기를 엎어 놓은 것같은 수백만개의 기암기석들이 갖가지 형태로 계곡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다.그토록 웅장한 도시와 역사가 어떻게 계곡 암굴속에 숨어 있었을까.그 수수께끼는 돌과 자연과 인간이 빚어낸 세계 7대 자연경관중의 하나인 카파토키아의 매력이다.

약 3백만년 전 에르지예스산의 화산 폭발로 인근 수백㎞에 걸쳐 거대한 용암층이 형성되었다.그리고 비바람과 홍수에 끊임없이 깎이고 닳아 용암층은 물결의 방향에 따라,또 바람이 부는대로 갖은 모양을 하고 태어났다.도토리 모양,버섯 모양,동물 모양 등 보는 방향은 물론 상상과 기분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인간세계에 내려보낸 신의 작품이 카파토키아인지도 모른다.

○세계 7대 자연경관의 하나

사람들은 그 뾰족 솟은 카파토키아 응회암 바위를 깎고 뚫어 거주공간을 만들었다.공기에 노출된 응회암은 약간의 단단한 연장에도 쉽게 손질되었다.그래서 사람들은 바깥의 덥고 건조한 기후를 피해 서늘하고 습기가 어린 암굴속에서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했다.그 속에는 사랑방과 안방이 있고,창고와 부엌도 마련되었다.아래층에는 소나 노새를 키우는 우리도 만들고,신앙생활을 위해 신성한 약속의 공간도 마련했다.위츠히사르라 명명한 거대한 언덕에는 수백 채의 암굴집이 올망졸망 구멍을 내고 벌집처럼 들어섰다.가까이 다가서면 놀라운 일을 목격할 수 있다.구멍마다에 사람이 살았다.그 속에 훌륭한 집을 꾸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삶은 먹고 마시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않았다.비잔틴시대에 기독교화한 여기 사람들은 암굴을 파서 교회를 짓고,벽면과 천장에 프레스코를 그렸다.자신들의 신앙을 마음껏 표출했던 것이다.그래서 4세기 후반 기독교가 이 암굴도시에서 꽃을 활짝 피웠다.콘스탄티노플과 같은 대도시를 피한 수도자들은 인기척이 드문 땅을 찾아 3천개의 교회를 지었다고 한다.으흘라르와 괴레메의 석굴 계곡에는 암굴교회군이 있다.계곡바닥을 거슬러 상류로 올라가면 깎아지른 계곡 사이로 수십개의 교회가 모습을 드러낸다.12세기경의 성 바라바라교회 벽면에 그린 ‘최후의 만찬’은 단연 수작이다.밧줄에 의지하지 않고는 다다를 수도 없는 가파른 절벽 가운데 바위를 파서 교회를 지었다.

괴레메의 석굴계곡을 벗어나 남쪽으로 1시간쯤 달렸다.마침내 ‘깊은 웅덩이’라는 이름의 데린쿠유 마을이 나타났다.지나가는 한 목동이 우연히 발견한 지하 대도시가 숨겨져 있는 땅이다.사람의 머리 하나가 겨우 들어갈만한 구멍 속에 2만명을 수용하는 어마어마한 지하도시가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헬멧을 쓰고 허리를 굽힌채 손전등을 비추며 화살표를 따라 가는 지하세계의 탐험이 시작되었다.표시된 방향 이외의 다른 길로 들어서지 말라는 안내원의 거듭되는 경고는 사뭇 섬뜩하게 들렸다.입구로부터 55m나 되는 지하 6층과 7층,8층에서는 일단 통행이 차단되었다.

○6만명 수용 새 유적지 발견

데린쿠유 마을의 무수한 지하통로들은 미로를 통해 복잡하게 얽혔다.빈 공간마다 거주지 흔적이 완연하다.방과 검게 그을린 부엌,방앗간과 창고로 쓴 공간이 있다.중앙에 깊게 파놓았던 공동우물에는 지금도 물이 고였다.모임의 장소로 사용된 듯한 회랑 한쪽 구석에서는 교회나 묘지의 흔적도 보인다.그들은 낮이 되면 지하에서 빠져나와 들에서 밀밭을 가꾸고 포도도 재배했다.항상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충분한 식량과 물을 지하에 저장하고,자기들만이 아는 미로를 통해 바깥세상과 연락을 취했다.미로 중간중간에는 큰 바위문을 두었다.비상시에 사용한 방어시설이었다.수만명 지하주민들이 불을 때어 빵을 구었음에도 연기는 흔적도 없이 분산되어 바깥으로 스며나갔다.

바위를 뚫어 불가사의한 지하도시를 건설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언제부터 이 도시가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해답도 없다.단지 6천∼7천년전 신석기 시대부터 부분적으로 바위속에서 혈거생활을 시작한 이래 로마초기에 박해를 피한 기독교인들이 숨어 들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그 후 기독교 시대에는 수도나 평범한 삶의 장소로 바위속을 뚫어 거주공간을 계속 넓혀갔다.13세기에 칭기즈칸의 말발굽이 닿았을 때도 입구를 봉쇄한 지하도시 속에서 완벽한 저항을 계속했다.그 지하도시가 몇층까지 내려가는지도 아직 모른다.어떤 이는 17∼18층은 족히 내려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에는 이 지하유적 이웃에서 아직 공개되지 않은 30여개의 지하도시를 더 찾아냈다.발굴중인 외즈코나크 지하 대도시인데,규모는 6만명을 수용한다고 한다.아마도 이 카파토키아 일대의 지하 암굴도시의 실체는 20세기가 밝혀내야 할 문명의 수수께끼일 수도 있다.<이희수 한양대 교수·이슬람사>

◎여행 가이드/수도 앙카라서 버스로 4시간… 호텔 10여곳

이스탄불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카이세르에 가서 자동차로 1시간이면 카파토키아의 중심지인 괴레메에 도착할 수 있다.수도 앙카라에서는 버스로 4시간 거리이다.세계적인 관광유적지라 30∼50달러 사이의 깨끗한 호텔이 10여개 밀집해 있다.모든 여행사에서 다양한 카파토키아 여행상품을 판매하고 있다.카파토키아는 중동에서도 이름난 수직 카페트 산지이기도 하다.한국계 여행사로는 윤투리즘(212­257­1361)과 원더풀 투어(212­257­2288)가 카파토키아 전문여행을 주선한다.
1998-01-2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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