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시는 12세기의 청빈한 성자 성 프란체스코의 고향이다.포도와 올리브로 유명한 움브리아에서 삼나무가 빽빽한 올리브언덕에 오르면 주변에 펼쳐진 녹색평야속에서 로마네스크의 수도원건축군이 장엄하고도 우아한 자태를 나타낸다.이 건축은 초기 이탈리아 고딕의 걸작품으로 프란체스코의 이름을 따서 성프란체스코성당으로 불린다.1253년에 완성된 이 교회는 성자의 묘가 있는 지하실 외에 2층에는 이탈리아의 대표적 화가인 치마부에의 ‘성모전’‘묵시록’등의 벽화와 지오토의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체스코’ ‘신·구약성서’ ‘성모와 구세주전’ ‘성 프란체스코전’벽화연작 등 성자의 생애가 보석같은 28장면으로 묘사되어 있다.
프란체스코는 ‘미움과 오해가 있는 곳에 사랑을’ 주는 ‘평화의 기도’로서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하늘을 나는 새들과도 마음의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져있다.부호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처음에는 방탕한 생활을 하며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그 뒤 중병을 앓으면서 ‘복음을 전파하라’는 예수의 음성을 듣고 사제가 되자 세속을 떨친채 빈자를 위한 헌신과 탁발의 생활을 지켜나갔다.1209년 교황의 허락을 받아 프란시스코 수도원을 설립했고 수도원장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몬타 델라 베르나에서 기도하다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환상을 체험,양손 양발 옆구리등 다섯군데에 입은 ‘인오상’은 가톨릭 사상 처음이자 가장 뚜렷한 기적으로 평가된다.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방의 지진으로 저 유명한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성당이 지붕의 일부가 내려앉고 지오토의 프라스코벽화들이 손상되었다니 애석한 일이다.지금도 연중 수십만에 이르는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신앙심을 다짐하는 ‘성지’이기 때문이다.이 성당의 훼손에 대해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피에르 로센베르관장도 ‘세계적 문화유산의 큰 재앙 초래’로 표현했다지만 수백년을 이어온 한 성인의 흔적이 하루 빨리 본상태로 복원되기를 빌어 마지않는다.‘성인은 자신의 사랑으로 바람소리를 변화시킬줄 안다’고 한 것처럼 모든 마음이 허약한 자들에게 구원을 주기 위해서라도 성 프란체스코성당이 영원하기를 바란다.<이세기 사빈논설위원>
프란체스코는 ‘미움과 오해가 있는 곳에 사랑을’ 주는 ‘평화의 기도’로서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하늘을 나는 새들과도 마음의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져있다.부호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처음에는 방탕한 생활을 하며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그 뒤 중병을 앓으면서 ‘복음을 전파하라’는 예수의 음성을 듣고 사제가 되자 세속을 떨친채 빈자를 위한 헌신과 탁발의 생활을 지켜나갔다.1209년 교황의 허락을 받아 프란시스코 수도원을 설립했고 수도원장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몬타 델라 베르나에서 기도하다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환상을 체험,양손 양발 옆구리등 다섯군데에 입은 ‘인오상’은 가톨릭 사상 처음이자 가장 뚜렷한 기적으로 평가된다.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방의 지진으로 저 유명한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성당이 지붕의 일부가 내려앉고 지오토의 프라스코벽화들이 손상되었다니 애석한 일이다.지금도 연중 수십만에 이르는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신앙심을 다짐하는 ‘성지’이기 때문이다.이 성당의 훼손에 대해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피에르 로센베르관장도 ‘세계적 문화유산의 큰 재앙 초래’로 표현했다지만 수백년을 이어온 한 성인의 흔적이 하루 빨리 본상태로 복원되기를 빌어 마지않는다.‘성인은 자신의 사랑으로 바람소리를 변화시킬줄 안다’고 한 것처럼 모든 마음이 허약한 자들에게 구원을 주기 위해서라도 성 프란체스코성당이 영원하기를 바란다.<이세기 사빈논설위원>
1997-09-29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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