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관음(외언내언)

백제관음(외언내언)

이세기 기자 기자
입력 1997-09-25 00:00
수정 1997-09-25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머리에는 반원형의 꽃무늬 보관을 쓰고 가슴에는 크고 둥근 꽃판을 단 목걸이 장식.왼손은 목이 긴 정병을 쥐었으며 오른손은 그대로 내려서 천의를 잡고 있다.‘수직성과 숭고성의 미감’으로 고졸청아한 기품을 완성한 것이 백제의 금동관음보살입상이다.

프랑스정부가 제정한 ‘일본의 해’를 맞아 지난 10일부터 파리 루브르박물관 드농관 특별전시실에서 선보인 ‘구다라간논(백제관음)’의 모습이다.프랑스언론들은 일본미술의 정수를 알기위해 ‘절대 놓쳐선 안될 전시회’라고 선전하는 모양이다.‘구다라(백제)’란 이름 자체가 반증하듯이 ‘백제관음’은 6,7세기경 백제에서 만들어져 일본으로 옮겨졌다는 것과 아스카(비조)시대 일본에 온 백제인이 만들었다는 설등이 있다.일본 상지대 무토 마코도(무등성) 교수는 백제의 성명왕이 불상과 건축가를 보내와 그때 불상을 처음 본 일본인들은 단정하고 엄숙한 모습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인보다 한국미술을 더 사랑하던 일본의 미술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유종열)는 1922년 그의 저서에서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국보중의 국보들은 대부분 한민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이들은 일본의 국보라기보다 조선의 국보로 불리지 않으면 안된다”고 쓰고있다.

우리의 고미술에 대해 끈질기게 연구해온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존 카터 코벨 박사도 84년 ‘한국문화가 일본에 끼친 영향’이라는 책에서 “일본 법륭사 금당의 ‘백제관음’이 백제의 공예품임을 말해주는 불변의 단서는 머리에 장식된 ‘보관’이 백제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연화당초 문양과 똑같다는 점”을 예로 들고 있다.1천300여년간 ‘백제관음’이란 명칭이 고수됐다면 그처럼 이 불상과 백제간의 특수관계를 말해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이세기 사빈논설위원>

1997-09-25 4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쿠팡 가입유지 혹은 탈퇴할 것인가?
쿠팡이 개인정보 유출 의혹 이후 진정성 있는 사과보다는 사태 축소에 급급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30~31일 국회 청문회에서 보여준 관계자들의 불성실한 태도 또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쿠팡 측은 이러한 논란에도 '탈퇴 회원은 많지 않다'고 발표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앞으로도 쿠팡 회원을 유지하실 생각입니까?
1. 유지할 계획이다.
2. 탈퇴를 고민 중이다.
3. 이미 탈퇴했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