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없는 생일상/이지운 사회부 기자(현장)

주인없는 생일상/이지운 사회부 기자(현장)

이지운 기자 기자
입력 1997-09-10 00:00
수정 1997-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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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야 부디 살아와다오” 가족들 눈물바다

9일 상오 10시30분 서울 서초구 잠원동 한신8차 아파트 박초롱초롱빛나리양(8)의 집.

나리양이 유괴된 지 11일째인 이날은 음력 8월8일로 나리양의 8번째 생일날이었다.

어머니 한영희씨(40)가 생일케이크에 꽂힌 8개의 초에 정성스레 불을 붙였다.이어 생일카드에 적은 글을 애끊는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주인없는 상을 차리고 보니 마음이 더 미어지는구나.부디 살아 돌아와 다오” “이름대로 아름답고 빛나는 한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동안 감정을 억제해온 아버지 박용택씨(39)도 더이상 속내를 감출수 없었다.주인 잃은 생일상에는 케이크와 닭튀김 미역국 밥 수저 한벌이 놓여 있었다.빈 의자에는 빨간풍선 파란풍선이 매어져 있었다.

“불을 끌까” 박씨가 소리없이 타고있는 촛불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냐 돌아올거야… 촛불이 꺼지기 전에” 어머니 한씨가 힘없이 되뇌었다.“나리야 나리야…” 망연자실한 표정의 한씨가 갑자기 나리양의 방으로 뛰쳐 들어갔다.

한씨가 나리양이 즐겨 입던 빨간 원피스를 쓰다듬으며 울부짖자 나리양의 외숙모 김정애씨(36)는 한씨의 뒤에서 숨죽여 흐느낄 뿐이었다.할머니 강덕연씨(60)는 부엌으로 가 몰래 눈물을 훔쳤다.

박씨마저 안방으로 들어가 나리양의 생일잔치는 갑자기 울음바다가 돼버렸다.

그 사이 생일케익위에 꽂혀있던 8개 양초는 모두 녹아내렸고 아무도 촛농을 걷어내려 하지 않았다.
1997-09-1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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