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약자 보호석(외언내언)

노약자 보호석(외언내언)

황병선 기자 기자
입력 1997-07-31 00:00
수정 1997-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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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읽으면서 이건 왜 못 읽지?” 출근길 1호선 지하철.40대 중년남자가 보호석에 버티고 앉아 신문을 읽고있는 한 젊은이를 향해 ‘노약자 장애인 보호석’이라고 쓴 커다란 팻말을 가리키며 내뱉은 소리다.

두어 정거장 전에 탄 할머니가 금세 쓰러질듯 안스럽게 손잡이에 매달려 있는데도 시선을 피하려는 듯 신문에 코를 박고 앉았던 대학생 차림의 젊은이는 전동차가 다음 정류장인 용산역에 서자 내렸다.겸연쩍은 얼굴로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던 것도 아니고 정차하자 벌떡 일어나 내려버렸다.

날씨가 더운 때문인지 요즘 지하철을 타면 눈을 감고 앉은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띈다.피곤보다는 아예 자리양보 같은 자질구레한 일에 신경을 쓰기싫다는 결의가 읽혀지는 경우가 적지않다.부근에 어린이를 등에 업고 땀을 뻘뻘 흘리는 아주머니나 노인들이 서있기라도 하면 무척 신경이 쓰인다.앉아있는 승객들을 죽 훑어본뒤 제일 젊은 사람에게 슬그머니 화가 치밀게 마련이다.좌석이 노약자 보호석일 경우 더욱 가만 있을수 없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아주머니 어디까지 가세요?”하고 묻는 것이 요즘 내가 쓰는 수법이다.“의정부요”하고 답하면 “아직 멀었네.힘드시겠어요”한다.이쯤에서 보호석에 앉았던 젊은이가 몸의 편안함보다 마음의 편안함을 찾아 일어서게 되면 내 작전은 성공이다.

이런 우회작전을 쓰게 된 것은 괜스레 나섰다 씁쓸한 경험을 한뒤부터다.코앞에 비틀거리며 서있는 흰 지팡이의 맹인은 안중에 없는 듯 보호석에서 잡담에 열을 올리고 있는 20세 남짓 세명에게 “이 사람들아.보호석은 장애인에게 앉을 권리가 있는 것 아냐” 했더니 대뜸 “댁이 뭐요” 하는게 아닌가.의당 “뭐야?”하자 이들은 “웬 별게 재수없게…” 눈을 부라리며 휑하니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버렸다.주위의 누구도 나를 거들어주지 않았다.

노인 공경의 나라였던 우리의 노약자 배려는 이제 서구사람들에게도 뒤지는 것 같다.제복입은 철도원이 열차를 돌며 보호석 주인을 찾아주기라도 해야할 지경이다.왜 점점 남이,어른이 눈에 보이지않게 돼가는 것인가.<황병선 논설위원>
1997-07-31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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