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호는 고대 중국에서 비롯돼 한자권 군주국가에서 사용하던 기년법이다.처음에는 특별한 명칭의 연호가 없었기 때문에 새 군주가 즉위한 이듬해를 원년으로 하여 기록했다.중국에서 연호제도가 정비된 것은 주나라 때인 BC 114년.이로부터 지방의 제후들까지도 중앙의 연호를 써 기년을 통일했으며,중국에 신속한 주변국들도 중국연호를 사용하게 되었다.
문헌에 나타나는 우리나라 최초의 독자적 연호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즉위한 AD 391년부터 사용한 영락.고구려의 영토를 대륙으로 넓힌 대왕의 업적이 상징하듯 우리나라에서의 독자연호 사용은 자주적 기상과 뻗어나는 국운을 상징하는 것이었다.신라도 진흥왕이후 100년간 독자연호를 사용했으나 당태종이 신라에서 연호를 따로 사용함은 부당하다고 하자 650년(진덕여왕 4년)부터 당나라 연호를 채택했다.
고려에서는 태조 왕건과 4대 광종이 각기 독자연호를 사용했으나 이후 말기까지는 중국연호를 썼다.조선왕조는 처음부터 중국연호를 쓰다가 중국이 청일전쟁에서 패해 종주국 행세를 못하게되자 음력1895년 11월17일을 양력으로 고쳐 개국 505년1월1일로 쓰면서 처음으로 건양 광무 등 독자연호를 제정,사용하기 시작했다.그러나 1910년(융희4년)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면서 연호도 사라졌다.
그런데 그 연호가 다시 한반도에 등장했다.북한이 김일성 3년상을 탈상하면서 그의 생애와 업적을 길이 빛내기 위해 ‘주체’라는 연호를 제정·사용키로 한것이다.또 그의 생일 4월15일은 ‘태양절’로 정했다고 한다.북한측 발표에 따르면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이 ‘주체’원년이라고 하니 올해는 ‘주체’86년이 된다.언필칭 공화국이라는 곳에서 군주시대의 상징인 연호를 쓰다니 여간 헷갈리는 일이 아니다.북한은 스스로 김일성왕조임을 선포한 셈이다.<김호준 논설주간>
문헌에 나타나는 우리나라 최초의 독자적 연호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즉위한 AD 391년부터 사용한 영락.고구려의 영토를 대륙으로 넓힌 대왕의 업적이 상징하듯 우리나라에서의 독자연호 사용은 자주적 기상과 뻗어나는 국운을 상징하는 것이었다.신라도 진흥왕이후 100년간 독자연호를 사용했으나 당태종이 신라에서 연호를 따로 사용함은 부당하다고 하자 650년(진덕여왕 4년)부터 당나라 연호를 채택했다.
고려에서는 태조 왕건과 4대 광종이 각기 독자연호를 사용했으나 이후 말기까지는 중국연호를 썼다.조선왕조는 처음부터 중국연호를 쓰다가 중국이 청일전쟁에서 패해 종주국 행세를 못하게되자 음력1895년 11월17일을 양력으로 고쳐 개국 505년1월1일로 쓰면서 처음으로 건양 광무 등 독자연호를 제정,사용하기 시작했다.그러나 1910년(융희4년)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면서 연호도 사라졌다.
그런데 그 연호가 다시 한반도에 등장했다.북한이 김일성 3년상을 탈상하면서 그의 생애와 업적을 길이 빛내기 위해 ‘주체’라는 연호를 제정·사용키로 한것이다.또 그의 생일 4월15일은 ‘태양절’로 정했다고 한다.북한측 발표에 따르면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이 ‘주체’원년이라고 하니 올해는 ‘주체’86년이 된다.언필칭 공화국이라는 곳에서 군주시대의 상징인 연호를 쓰다니 여간 헷갈리는 일이 아니다.북한은 스스로 김일성왕조임을 선포한 셈이다.<김호준 논설주간>
1997-07-1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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