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충무무공훈장 받는 윤재선 예비역대령

화랑·충무무공훈장 받는 윤재선 예비역대령

김경운 기자 기자
입력 1997-06-24 00:00
수정 1997-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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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년만에 찾은 6·25 전공/육사7기로 입대… 옥동·백석산·인제 전투참가/“훈장에 관심없었는데… 먼저간 전우에 죄송”

6·25 참전 용사인 윤재선 예비역대령(74·서울 송파구 가락2동)이 전쟁 발발 47년만인 24일 군인의 최고 영예인 화랑·충무무공 훈장을 받는다.

육군이 펼쳐온 「훈장 찾아주기 운동」에 따라 그동안 방치됐던 훈장이 주인을 찾은 것.훈장 수여와 함께 국가 유공자로서 각종 혜택도 받는다.

전쟁의 상처가 워낙 깊다보니 훈장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 뒤늦게 훈장을 받는 사유다.6·25 전쟁때는 장교로 옥동·백석산·인제·관대리 전투 등에 참가해 생사를 넘나들며 빛나는 공을 세웠다.

윤씨는 48년 12월 육사 7기로 입대,소위로 임관한 뒤 경기도 시흥에 있던 보병학교에서 예비장교와 전역 3개월을 앞둔 예비군으로 구성된 「호국군」의 중대장으로 복무했다.

윤씨는 『요즘처럼 연일 무덥던 50년 6월25일 외출울 나와 동대문운동장에서 축구시합을 보던중 「휴가 외출 병력은 즉각 귀대하라」는 방송을 들었다』고 6·25 발발 당시를 회상했다.그 때만해도 북한군의 일시적인 38선 도발 쯤으로 여겼다.

부대에 복귀하자 이틀 전에 입소한 장교후보생 400여명에게 일본군이 남긴 99식 소총을 쥐어주고 5발의 연습사격을 시킨 뒤 김포지구 전투에 뛰어들었다.적탄에 쓰러지는 후보생들을 눈물로 쳐다보고 폭우로 질척거리는 땅에 다리를 끌다시피하면서 후퇴했다.

이듬해인 51년 겨울에는 강원도 옥동지구 전투에서 고지를 오르는 사단규모의 적을 상대해 중대 규모의 병력으로 사투를 벌이다 왼쪽 허벅지에 관통상을 입었다.미 해병대도 고전하던 난공불락의 강원도 백석산(1154m)고지를 탈환,유엔군이 재진격하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61년 예편한 윤씨는 『해마다 이맘 때면 전장의 상처가 가슴을 짓누른다』고 말했다.한 민족인 젊은이들이 총뿌리를 겨누고 피를 뿌렸던 과거가 반세기가 다되도록 이산가족과 굶주림이라는 분단 현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북한의 실정을 생각하면 자유민주체제를 고수한 우리의 선택이 옳바른 것이었다고다시 한번 자부한다』고 강조했다.<김경운 기자>
1997-06-2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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