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극올림픽」을 기다리며(박갑천 칼럼)

「서울연극올림픽」을 기다리며(박갑천 칼럼)

박갑천 기자 기자
입력 1997-06-01 00:00
수정 1997-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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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이르는 토박이말로는 어떤게 알맞을까.우선「노릇」을 생각해볼수 있겠다.그 중세어는 「노□」인데 「놀다」에 「□」이 붙어 이루어졌다.「□」은 뜻없는 뒷가지(접미사)일수도 있으나 시작(처음)을 뜻하는「씨앗」「앗참」(아침)의 「□」일수도 있다.「훈몽자회」에는 「노 희희」「노□바치우우」로 나와 있으니 「노□­노릇」이 연극이나 배우와 관계되는 것임을 알게한다.그 다음에 생각해볼 말이 「짓」이다.그래서 연극으로는 「노릇」과 구별하여 「노랏」 또는 「노랏짓」이란 말을 써봄직도 하다.

생각하자면 이승은 연극무대다.이승을 사는 우리 모두는 「노랏바치­배우」고.그것도 조연 아닌 주연.하루 24시간 끊임없이 희극·비극을「노랏짓­연희」한다.각본은 없다.그런데도 얼굴없는 연출자의 각본따라 맹문모르고 꺼들먹거리는 꼭두각시로 되고있는 이승의 삶들이다.

우리보다 먼저 이승을 살다간 장주가 어느날 꿈을 꾼다.꿈속에서의 그는 한마리 호랑나비였다.한데 갑자기 잠에서 깨니 그는 둘레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장주였다.어찌된일일까.장주가 호랑나비로 된 꿈을 꾼 것일까.호랑나비가 장주로 된 꿈을 꾼 것일까.이「장자」(제물론)의 호접몽 우화는 덧없는 인생을 말한다.한자리 꿈이라할 이승의 연극같은 삶을 말해주고도 있다.

잠깐후면 숨거둘 사람이 그걸 모르기에 게접스레 돈과 남의 삭신과 권세를 탐한다.마치 백년이나 살 것처럼.하늘거리는 꿈속의 한마리 나비임을 모르는채.눈에 안보이는 연출가는 이 연극의 진행에 어떤 뜻이라도 둔 것일까.너무 즐거워하면 금방 눈물을 주고 너무 슬퍼하면 웃음을 보내어 달랜다.그러므로 이승의 연극에는 희극·비극의 버렁이 따로 없다.희극이 비극이고 비극이 희극이다.

얼핏 베토벤만 생각해도 그렇잖은가.인류의 청각에 기쁨을 심어주어 오고있는 그에게서 청각을 뺏어가버린 연출가.웃어야 할 것인가,울어야 할 것인가.죽음을 앞둔 베토벤은 그 대목을 느꼈던건지 모른다.자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친구여,박수를!희극은 끝났느니』 그는 자신의 비극적이라할 삶을 희극이라 표현했다.눈감으려면서 스스로 으밀아밀 비웃어봤던걸까.

오는 가을(9월1일∼10월15일) 서울에서 세계연극잔치가 열린다.70여나라에서 3천여명이 참가하는 연극올림픽.공연예술사에 획을 긋는 이 잔치를 멋있게 훌륭히 치러내야겠다.〈칼럼니스트〉
1997-06-01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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