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청문회의 교훈/문용린 서울대 교수·교개위 상임위원(시론)

한보 청문회의 교훈/문용린 서울대 교수·교개위 상임위원(시론)

문용린 기자 기자
입력 1997-04-29 00:00
수정 1997-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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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이엔가 청문회란 말이 우리 사회에서도 아주 흔한 용어가 되어 버렸다.내로라 했던 사람들이 위축된 모습으로 앉아서,서슬이 퍼런 국회의원들의 불호령을 들으며 겁난 눈을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면서 청문회의 위력을 많은 국민들이 느끼고 있다.

대체로 청문회의 진행과 그 내용을 보면서 두 가지 시각이 교차되고 있는 것 같다.하나는 『절망을 확인했다』는 시각인 바,앞뒤가 안 맞는 진술,후안무치한 태도,뉘우침과 죄의식이 결여된 자세,그리고 무대 뒤에서 벌어졌을 것으로 연상되는 정경유착의 냄새 등에 주목하면서 『과연 이 나라가 가능성이 있겠는가』하고 망연자실해 하는 국민들의 시각이 여기에 해당된다.

또 다른 하나의 시각은 『그래도 위안을 얻는다』는 시각인 바,현직 대통령의 아들을 비롯해서 현정권하에서 최고위직에 있던 사람들을 청문회장에 끌어낼 수 있게 된 상황에 주목하면서 『권위주의를 벗어나서,새로운 민주화의 어려운 첫걸음이 이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라고 애써서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국민들이 여기에 해당된다.○절망·위안 두가지 시각교차

물론 이 두 시각은 양립 불가능한 관점은 아니다.두 입장을 동시에 교차시켜서 갖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어느 한쪽의 시각만으로 보기에는 너무 불안하기 때문이다.가망없다고만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 않은가? 청문회의 증인에게도 실망하고 질문하는 국회의원에게도 실망하지만 『이젠 정말 가망 없다』라고 결론 내려서 어쩔 것인가? 우리와 우리의 자손은 계속 존재해야 하고 어쨌거나 국가가 있는한 정치는 존속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청문회가 그 자체로 하나의 민주주의 발전 척도로 간주될 수는 있지만 긍정적으로만 보기에는 너무 미심쩍고 불안하다.따라서 이번의 청문회로 불거진 사태를 민주 발전의 한 징표로만 간주하고 넘어가기엔 너무 위태로워 보인다.

그래서 이번의 청문회를 절망 상태에 이른 쇠퇴의 징표로 볼 것인가,권위주의의 굳은 껍질이 깨지고 탈각하는 고통의 징표로 볼 것인가? 이런 질문을 계속하면서 우리는 그 양극의 중간 어디쯤에서 청문회가 암시하는 역사의 방향을 찾아야 한다.다시 말하면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느낀 대한민국의 절망적 상태를 항상 염두에 두면서,권위주의의 오래되고 두꺼운 껍질을 벗고,민주주의를 싹틔우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가장 절실한 희망은 가장 절망스러울때 생겨나는 법이 아니던가?

○황장엽씨 어떻게 느꼈을까

얼마 전에 망명한 황장엽씨는 과연 이번의 청문회를 보면서 어떤 시각을 갖게 되었을지 궁금하다.이른바 절망의 시각을 갖게 되었을까? 아니면 『역시 대한민국은 다르다』는 시각을 갖게 되었을까? 청문회를 통해서 드러난 부패구조와 정경유착의 실상을 보면서 그가 북한에 있으면서 북한체제에 대하여 느꼈던 한계를 다시금 남한체제에 대해서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사상가이기 때문에 조금은 보는 시각이 복잡하고 균형적이 아닐까 생각한다.청문회를 통해서 창피하고 부끄러운 모습이 드러나기는 했지만 그런 잘못된 일을 드러나게 하고 시선을 끌게 하고 손가락질받게 하는 원천적인 힘이 어느 한 권력자에게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점을 그는 이미 꿰뚫어 보았으리라고 믿고 싶다.

대통령도 국민의 힘 앞에서는 자기 자식을 법앞에 내맡길 수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이번 청문회는 그것이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함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뜻깊은 것이라 생각한다.
1997-04-29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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