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 존폐 기로에/「비자금 차명세탁은 무죄」 판결 파장

금융실명제 존폐 기로에/「비자금 차명세탁은 무죄」 판결 파장

곽태헌 기자 기자
입력 1997-04-18 00:00
수정 1997-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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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 이자” 검은 돈 기업유입 봇물 이룰듯

대법원이 17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실명으로 전환해준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과 이경훈 (주)대우 회장 등에 대해 최종 무죄판결을 내린 것은 합의차명을 이용한 돈세탁을 공식적으로 합법화해준 셈이다.이에 따라 사실상 금융실명제는 무력화됐다는 평도 나오고 있다.

합의차명자들에 대해서는 형사상 책임 뿐 아니라 세금상 불이익도 없어 앞으로 합의차명을 통한 돈세탁이 더욱 많이 이뤄질 전망이다.재정경제원 금융실명제 실시단의 한 관계자는 『이름을 빌려줘 합의차명을 해준 사람에 대해 실명제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나 검찰이 업무상 방해죄로 기소해 결과에 관심을 뒀지만 무죄로 최종 확정돼 처벌할 길은 없게됐다』며 『다만 금융기관 임직원이 개입하면 그 임직원만 실명법에 따라 과태료(최고 5백만원)을 물고 내부징계를 받게된다』고 설명했다.

금융실명제긴급명령은 개인은 종합과세 대상이지만 법인은 종합과세 대상이 아닌 점을 이용해 개인이 법인에게 싼 이자로 돈을 주고 돈세탁을 해 종합과세를 피할수 있는 길이 열린 것으로 볼수 있다.이름을 빌려준 사람에 대한 처벌이 무산돼 거액의 괴자금이 합법적으로 기업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 훨씬 수월해진 셈이다.

수년전부터 10대그룹을 비롯한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은 수천억원의 괴자금을 연 5%내외의 싼 이자로 빌려쓰도록 권유받아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앞으로 이러한 괴자금을 쓰는 기업들이 실제로 늘어날 전망이다.금융기관 직원들이 예금수신고를 높이기 위해 실제 전주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계좌를 만들어주는 합의차명이 종전보다 활발히 일어날 가능성도 높다.

법인이 아닌 개인이 다른 사람에게 이름을 빌려줘도 형사상 및 세무상 불이익이 없기는 마찬가지다.이름을 빌려준 개인은 종합과세 대상이 돼 세금을 내야하지만 이러한 경우도 이름을 빌려간 쪽에서 세금을 대신 내주면 그만이다.종합과세 체계가 누진세율로 돼 있어 이름을 빌려간 쪽에서 세금을 대신 내도 재산이 분산돼 세금이 줄어들고 자신의 재산상의 비밀을 유지할 수도 있는 이점이 생긴다.지난해 말 현재 실명예금계좌 중 실명확인을 하지 않은 예금액은 3조2천억원,가명예금계좌에서 실명전환하지 않은 금액은 3백44억원이다.가·차명 계좌에서 이미 실명전환한 금액은 6조3천9백95억원이다.<곽태헌 기자>
1997-04-18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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