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1·28 사변」 직후/일군,상해에 위안소 첫 설치

1932년 「1·28 사변」 직후/일군,상해에 위안소 첫 설치

이석우 기자 기자
입력 1997-04-12 00:00
수정 1997-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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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상해사범대교수 연구/한국처녀 80명·일 창녀 24명 끌어다/탈출 못하게 전기철조망에 도랑 파

일본군이 한국,중국에서 부녀자들을 끌어다 위안소를 세워 성노예로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32년 일본군의 상해침략사건인 「1·28사변」직후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광주의 남방일보가 발행하는 남방주말 11일자는 중국 상해사범대학의 소지양 교수(41·역사학과)의 연구결과를 인용,일본군은 1·28사변직후 한국처녀 80명,일본 사창가 여자들 24명 등 1백4명을 끌어다 상해 군공로에 처음으로 「양가댁 오락소」란 이름으로 위안소를 운영했다고 보도했다.이 신문은 당시 일본군 화중 방면군의 참모장 반소수가 상해 파견군 부참모장인 강촌령자의 명령에 따라 이같은 위안소를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일본측 자료를 근거로 한 소지양교수에 따르면 이 위안소는 방이 있는 10채의 단층 목조건물로 구성됐으며 여인들의 탈출에 대비,전기 철조망을 치고 외곽에 도랑을 파놓았던 것으로 확인됐다.위안소측은 한국 여인들에게도 남의 눈을 속이기 위해 일본옷을 입도록 했다는 것이다.

최초의 위안소 설치연도 및 장소에 대한 연구결과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북경=이석우 특파원>

1997-04-1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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