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인터넷붐속 「퓨처TCP」로 우뚝/국내 1만여기관 40만명 사용… 시장 30% 석권/이젠 네트워크 보안SW 개발… 중국에 곧 진출
정보통신 네트워크 전문업체 (주)퓨처시스템(대표 김광태)이 간판을 내건 87년 11월은 컴퓨터가 한창 국내에 도입되던 무렵이었다.컴퓨터 관련산업은 무한한 가능성을 배태한 채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표현이 적당한 그런 시기였다.이 회사 영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철호 이사(35)는 『대기업 회사원이 되기는 싫고 박사 진학도 여의치 않아 배운 도둑질이라고 네트워크 관련 소프트웨어 기술을 밑천으로 대학원 동기인 김사장과 창업에 나섰다』고 당시를 회상한다.요즘의 젊은 창업자들처럼 눈에 보이는 시장을 앞에 놓고 엄청난 성공을 염두에 둔 시작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가 「도둑질」을 배운 곳은 우리나라 인터넷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전길남 교수 실험실.아이네트 허진호사장,에이앤지 정철 사장 등 기라성같은 컴퓨터 엔지니어들을 배출한 이곳에서 그는 전산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현재맡은 일은 영업 분야지만 창업 초기에는 그도 엄연한 엔지니어였다.초기 제품으로 한글 유닉스,한글 X윈도 등의 개발을 주도했다.
창업이후 4년간은 주로 소프트웨어 용역에 주력했다.그러나 수입의 안정성이나 수익성 측면에서 용역이 갖고 있는 한계를 느끼면서 패키지 상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판단에 이른다.그래서 나온 제품이 「퓨처 TCP」.인터넷 표준 프로토콜인 TCP/IP의 일종이다.퓨처TCP가 처음 시장에 나온 것은 지난 92년.인터넷이 아직 본격화되기 이전이어서 몇몇 기업들이 근거리통신망(LAN)에 외국회사의 TCP/IP제품들을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면밀한 상품기획이나 시장동향 파악도 채 못하고 내놓은 제품이었는데 회사의 사업기틀을 잡아준 효자상품이 될 줄은 저희들도 미처 예견하지 못한 일이었지요』
이이사가 말하는 퓨처TCP의 행운은 바로 93년부터 진행된 LAN의 급속한 확산이다.또 95년부터 붐을 탄 인터넷도 호황세를 도왔다.3.5버전까지 나온 이 제품은 은행,기업체,관공서등 국내 1만여 기관에 보급돼 40만명이 사용하고 있다.실제로이 회사의 작년 매출액 92억원가운데 40억원이 이 제품 판매로 이뤄졌다.150억원이 채 안되는 국내 TCP/IP시장의 30%에 달하는 수치다.94년엔 3.0버전으로 한국신소프트웨어 상품대상 우수상을 획득했다.최근 중국어 버전도 개발,중국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으며 보안기능 강화에 초점을 맞춘 4.0버전도 개발중이다.
이것이 발판이 돼 이후 네트워크 관련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제품을 잇따라 내놓았다.유닉스·IBM서버 등 다양한 서버에서 작동하는 통합 에뮬레이터 「오픈 호스트」와 네트워크 프린터와 팩스를 클라이언트 PC에서 공유할 수 있도록 한 하드웨어제품 「오픈 서버1」등이 그것이다.
이이사는 그러나 TCP/IP시장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말한다.유닉스나 윈도NT등 서버가 TCP/IP를 기본 탑재한 상태로 나오고 있어 안정성이나 성능면에서 뒤떨어지지 않는다지만 퓨처TCP를 별도로 구입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설명이다.그래서 이 회사가 새 활로로 삼은 분야는 네트워크 보안프로그램.전자 상거래 등 민간분야 뿐만아니라 국가기관의 기밀정보가 네트워크를 타고 흘러다닐때 외부의 침투를 막는 장치는 네트워크의 실용화 여부에 직결된 문제다.
『보안프로그램 분야는 시장규모의 예측이 힘들 정도로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우리 회사가 보유한 기술은 국내 최고 수준이어서 어느 회사보다 강력한 제품을 만들 자신이 있어요.최근 박사급 개발요원들을 채용,기술력을 대폭 보강하기도 했습니다』 보안프로그램 분야에 회사의 미래를 걸었다는 그는 건곤일척의 대회전을 앞둔 장수처럼 비장하다.(02)5628925.<김환용 기자>
정보통신 네트워크 전문업체 (주)퓨처시스템(대표 김광태)이 간판을 내건 87년 11월은 컴퓨터가 한창 국내에 도입되던 무렵이었다.컴퓨터 관련산업은 무한한 가능성을 배태한 채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표현이 적당한 그런 시기였다.이 회사 영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철호 이사(35)는 『대기업 회사원이 되기는 싫고 박사 진학도 여의치 않아 배운 도둑질이라고 네트워크 관련 소프트웨어 기술을 밑천으로 대학원 동기인 김사장과 창업에 나섰다』고 당시를 회상한다.요즘의 젊은 창업자들처럼 눈에 보이는 시장을 앞에 놓고 엄청난 성공을 염두에 둔 시작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가 「도둑질」을 배운 곳은 우리나라 인터넷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전길남 교수 실험실.아이네트 허진호사장,에이앤지 정철 사장 등 기라성같은 컴퓨터 엔지니어들을 배출한 이곳에서 그는 전산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현재맡은 일은 영업 분야지만 창업 초기에는 그도 엄연한 엔지니어였다.초기 제품으로 한글 유닉스,한글 X윈도 등의 개발을 주도했다.
창업이후 4년간은 주로 소프트웨어 용역에 주력했다.그러나 수입의 안정성이나 수익성 측면에서 용역이 갖고 있는 한계를 느끼면서 패키지 상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판단에 이른다.그래서 나온 제품이 「퓨처 TCP」.인터넷 표준 프로토콜인 TCP/IP의 일종이다.퓨처TCP가 처음 시장에 나온 것은 지난 92년.인터넷이 아직 본격화되기 이전이어서 몇몇 기업들이 근거리통신망(LAN)에 외국회사의 TCP/IP제품들을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면밀한 상품기획이나 시장동향 파악도 채 못하고 내놓은 제품이었는데 회사의 사업기틀을 잡아준 효자상품이 될 줄은 저희들도 미처 예견하지 못한 일이었지요』
이이사가 말하는 퓨처TCP의 행운은 바로 93년부터 진행된 LAN의 급속한 확산이다.또 95년부터 붐을 탄 인터넷도 호황세를 도왔다.3.5버전까지 나온 이 제품은 은행,기업체,관공서등 국내 1만여 기관에 보급돼 40만명이 사용하고 있다.실제로이 회사의 작년 매출액 92억원가운데 40억원이 이 제품 판매로 이뤄졌다.150억원이 채 안되는 국내 TCP/IP시장의 30%에 달하는 수치다.94년엔 3.0버전으로 한국신소프트웨어 상품대상 우수상을 획득했다.최근 중국어 버전도 개발,중국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으며 보안기능 강화에 초점을 맞춘 4.0버전도 개발중이다.
이것이 발판이 돼 이후 네트워크 관련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제품을 잇따라 내놓았다.유닉스·IBM서버 등 다양한 서버에서 작동하는 통합 에뮬레이터 「오픈 호스트」와 네트워크 프린터와 팩스를 클라이언트 PC에서 공유할 수 있도록 한 하드웨어제품 「오픈 서버1」등이 그것이다.
이이사는 그러나 TCP/IP시장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말한다.유닉스나 윈도NT등 서버가 TCP/IP를 기본 탑재한 상태로 나오고 있어 안정성이나 성능면에서 뒤떨어지지 않는다지만 퓨처TCP를 별도로 구입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설명이다.그래서 이 회사가 새 활로로 삼은 분야는 네트워크 보안프로그램.전자 상거래 등 민간분야 뿐만아니라 국가기관의 기밀정보가 네트워크를 타고 흘러다닐때 외부의 침투를 막는 장치는 네트워크의 실용화 여부에 직결된 문제다.
『보안프로그램 분야는 시장규모의 예측이 힘들 정도로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우리 회사가 보유한 기술은 국내 최고 수준이어서 어느 회사보다 강력한 제품을 만들 자신이 있어요.최근 박사급 개발요원들을 채용,기술력을 대폭 보강하기도 했습니다』 보안프로그램 분야에 회사의 미래를 걸었다는 그는 건곤일척의 대회전을 앞둔 장수처럼 비장하다.(02)5628925.<김환용 기자>
1997-03-21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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