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진
·북경시장 역임 터줏대감
·정책부작용 쉼없이 충고
□만리
·지방 자율허용 등 자유파
·개혁확대 터닦아온 인물
□박일파
·포스트모시대 청사진 설계
·두 아들도 차세대 지도자
□송평
·규율 엄격적용 당재건파
·장정 후반기 좌장격 위치
중국건국의 주도자인 마지막 남은 혁명1세대들이 황혼속에서도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이들은 80∼90대의 고령에도 건강과 영향력을 유지한 채 하루하루 수명싸움속에 「노인세(노인방)」의 존재를 과시하고 있다.
현재 정치국 상무위원상당의 최고위 원로들은 6명.팽진(96),양상곤(91),만리(82),송평(81),박일파(90),송임궁(91)이다.광동서 휴양중인 송임궁을 제외하곤 모두 북경에 머물고 있다.이들은 비서와 차량을 제공받고 각종 당의 내부문서와 주요 결정에 대한 사전 통지를 받는 「이휴」상태다.이들은 공식 직무서 떠난 지 오래고 지난 92년 중앙고문위원회의 해산으로 공식적으로 정치과정에 간여치 않는다.그러나 공산당 및 인민해방군의 창립 일원으로서의 인적 고리는 발언권을 유지케 한다.이들은 원로간 비공식 모임을 통해 공동의 목소리를 모으기도 하지만 각각 당조직,자신들이 선발한 정부및 당지도부의 후계자들을 통로로 의견을 당지도부에 전달하며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각자의 색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지도부가 결속할 경우 간여의 틀이 없지만 권력투쟁으로 분열이 심화될 때 이들의 입김은 높아진다.
보수와 핵심인 팽진은 등소평으로 최고 원로가 됐다.이붕의 지지세력으로 오랜기간동안 북경시 시장 등을 역임,북경의 터줏대감격인 그는 개혁개방의 부작용에 대한 경고를 쉬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안징성에서 지난 77년 농촌개혁을 실험적으로 도입,중국전역의 개혁개방 확대의 기초를 닦은 만이는 유연한 자세와 지방의 자율권확대 등 자유주의적 태도를 견지,관심을 끌고 있다.그는 조자양의 자유주의적 경향에 동조적이란 평이다.학생운동지도자로 시작,부총리 등 중국의 재정금융 및 공업방면의 기초를 세운 박일파는 「몇몇 중대결정과 사건에 관한 회고」란 베스트셀러를 저술,모택동시대의 반성과 개혁개방의 타당성을 강조했다.그의 아들인 박희성과 박희래 등은 차세대 지도자로 대를 잇고 있다.그는 젊은 태자당성원들을 자주 만난다.당조직부 부장,정치국 상무위원 등을 지낸 보수적 색채의 송평도 80나이에도 최근까지 가벼운 수영과 산보,독서를 즐기며 소일하고 있다.연안 장정 후반기세대로 청화대출신의 좌장격인 송평은 당의 약화를 걱정하며 당조직 재건 및 엄격한 규율집행 등을 강조하고 있다.이밖에도 장애평,초극 등 31명의 노간부들은 중국지도부로부터 원로대우를 받고 있다.<북경=이석우 특파원>
·북경시장 역임 터줏대감
·정책부작용 쉼없이 충고
□만리
·지방 자율허용 등 자유파
·개혁확대 터닦아온 인물
□박일파
·포스트모시대 청사진 설계
·두 아들도 차세대 지도자
□송평
·규율 엄격적용 당재건파
·장정 후반기 좌장격 위치
중국건국의 주도자인 마지막 남은 혁명1세대들이 황혼속에서도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이들은 80∼90대의 고령에도 건강과 영향력을 유지한 채 하루하루 수명싸움속에 「노인세(노인방)」의 존재를 과시하고 있다.
현재 정치국 상무위원상당의 최고위 원로들은 6명.팽진(96),양상곤(91),만리(82),송평(81),박일파(90),송임궁(91)이다.광동서 휴양중인 송임궁을 제외하곤 모두 북경에 머물고 있다.이들은 비서와 차량을 제공받고 각종 당의 내부문서와 주요 결정에 대한 사전 통지를 받는 「이휴」상태다.이들은 공식 직무서 떠난 지 오래고 지난 92년 중앙고문위원회의 해산으로 공식적으로 정치과정에 간여치 않는다.그러나 공산당 및 인민해방군의 창립 일원으로서의 인적 고리는 발언권을 유지케 한다.이들은 원로간 비공식 모임을 통해 공동의 목소리를 모으기도 하지만 각각 당조직,자신들이 선발한 정부및 당지도부의 후계자들을 통로로 의견을 당지도부에 전달하며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각자의 색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지도부가 결속할 경우 간여의 틀이 없지만 권력투쟁으로 분열이 심화될 때 이들의 입김은 높아진다.
보수와 핵심인 팽진은 등소평으로 최고 원로가 됐다.이붕의 지지세력으로 오랜기간동안 북경시 시장 등을 역임,북경의 터줏대감격인 그는 개혁개방의 부작용에 대한 경고를 쉬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안징성에서 지난 77년 농촌개혁을 실험적으로 도입,중국전역의 개혁개방 확대의 기초를 닦은 만이는 유연한 자세와 지방의 자율권확대 등 자유주의적 태도를 견지,관심을 끌고 있다.그는 조자양의 자유주의적 경향에 동조적이란 평이다.학생운동지도자로 시작,부총리 등 중국의 재정금융 및 공업방면의 기초를 세운 박일파는 「몇몇 중대결정과 사건에 관한 회고」란 베스트셀러를 저술,모택동시대의 반성과 개혁개방의 타당성을 강조했다.그의 아들인 박희성과 박희래 등은 차세대 지도자로 대를 잇고 있다.그는 젊은 태자당성원들을 자주 만난다.당조직부 부장,정치국 상무위원 등을 지낸 보수적 색채의 송평도 80나이에도 최근까지 가벼운 수영과 산보,독서를 즐기며 소일하고 있다.연안 장정 후반기세대로 청화대출신의 좌장격인 송평은 당의 약화를 걱정하며 당조직 재건 및 엄격한 규율집행 등을 강조하고 있다.이밖에도 장애평,초극 등 31명의 노간부들은 중국지도부로부터 원로대우를 받고 있다.<북경=이석우 특파원>
1997-02-21 8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