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대박물관팀 진주시 남강댐상류 덕천강유역/두둑·고랑 갖춘 철기시대의 농사흔적 뚜렷/삼한사회 등장시기… 변한 세력의 터전 추정
경남 진주시 대평면 상촌리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농경유적이 발굴됐다.지금까지 밝혀진 농경유적 가운데 가장 오래된 상촌리유적은 초기철기시대(BC 3,000∼0년)농사흔적을 뚜렷이 간직하고 있다.건국대박물관 최무장 교수팀이 발굴한 상촌리유적은 남강댐 상류 덕천강가 층적평야지대에 자리잡은 대규모 농경유적이다.
상촌리 농경유적은 9천600㎡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분포되었다.현재 드러난 농경지에는 이랑이 규칙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모두 3개 구역으로 나누어 발굴한 농경유적 가운데 A구역은 5m 간격으로 두둑을 만들고 50㎝너비의 고랑을 파놓았다.지금까지 확인한 이들 이랑은 남북방향으로 50m나 길게 뻗혀있다.그리고 13구역은 이랑 너비를 불규칙하게 동서방향으로 만들어 놓고,긴 고랑을 남북방향으로 내어 이랑들과 교차시켰다.
이들 농경지의 고랑은 물을 댔던 관개시설로 보았다.이랑은 두둑과 고랑의 흙색깔이 서로 달랐다.두둑의 흙색깔이 고랑의 흙색깔 보다 훨씬 더 검었는데,그 이유는 거름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됐다.특히 상촌리일대 평야의 흙은 비옥하기 이를데 없는 충적토.거기다 수량이 풍부한 강물을 끼고있는 탓에 초기철기시대 당시에도 농경조건이 대단히 좋았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고 이 일대의 시대층위를 가려내기 위해 판 C지구에서는 초기철기시대 층위 아래 형성되었던 청동기시대 층위도 찾아냈다.청동기시대 층위에서는 기둥구멍이 있는 움집터가 발견됐다.또 초기철기시대 생활층에서는 베를 짤때 쓰는 가락바퀴와 고기잡이 그물에 매다는 어망추,토기 등의 유물을 수습했다.이밖에 현재의 지표 아래로 하부구조가 묻혀있는 고인돌 2기가 확인됐다.
상촌리 선사농경지가 이루어진 초기철기시대는 삼한사회가 등장한 시기에 해당한다.그러니까 삼한시대인 것이다.이 지역은 농경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진 변한사회 한 세력집단의 터전일 가능성이 많다.중국의 사서 「삼국지」에 나오는 변진의 고자미동국 중심지로 알려진 고성이 그리멀지않은 거리에 있다.그러나 고성지방의 유적은 조개더미가 주류를 이루어 상촌리 농경유적과는 그 성격이 아주 다르다.<진주=황규호 기자>
경남 진주시 대평면 상촌리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농경유적이 발굴됐다.지금까지 밝혀진 농경유적 가운데 가장 오래된 상촌리유적은 초기철기시대(BC 3,000∼0년)농사흔적을 뚜렷이 간직하고 있다.건국대박물관 최무장 교수팀이 발굴한 상촌리유적은 남강댐 상류 덕천강가 층적평야지대에 자리잡은 대규모 농경유적이다.
상촌리 농경유적은 9천600㎡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분포되었다.현재 드러난 농경지에는 이랑이 규칙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모두 3개 구역으로 나누어 발굴한 농경유적 가운데 A구역은 5m 간격으로 두둑을 만들고 50㎝너비의 고랑을 파놓았다.지금까지 확인한 이들 이랑은 남북방향으로 50m나 길게 뻗혀있다.그리고 13구역은 이랑 너비를 불규칙하게 동서방향으로 만들어 놓고,긴 고랑을 남북방향으로 내어 이랑들과 교차시켰다.
이들 농경지의 고랑은 물을 댔던 관개시설로 보았다.이랑은 두둑과 고랑의 흙색깔이 서로 달랐다.두둑의 흙색깔이 고랑의 흙색깔 보다 훨씬 더 검었는데,그 이유는 거름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됐다.특히 상촌리일대 평야의 흙은 비옥하기 이를데 없는 충적토.거기다 수량이 풍부한 강물을 끼고있는 탓에 초기철기시대 당시에도 농경조건이 대단히 좋았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고 이 일대의 시대층위를 가려내기 위해 판 C지구에서는 초기철기시대 층위 아래 형성되었던 청동기시대 층위도 찾아냈다.청동기시대 층위에서는 기둥구멍이 있는 움집터가 발견됐다.또 초기철기시대 생활층에서는 베를 짤때 쓰는 가락바퀴와 고기잡이 그물에 매다는 어망추,토기 등의 유물을 수습했다.이밖에 현재의 지표 아래로 하부구조가 묻혀있는 고인돌 2기가 확인됐다.
상촌리 선사농경지가 이루어진 초기철기시대는 삼한사회가 등장한 시기에 해당한다.그러니까 삼한시대인 것이다.이 지역은 농경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진 변한사회 한 세력집단의 터전일 가능성이 많다.중국의 사서 「삼국지」에 나오는 변진의 고자미동국 중심지로 알려진 고성이 그리멀지않은 거리에 있다.그러나 고성지방의 유적은 조개더미가 주류를 이루어 상촌리 농경유적과는 그 성격이 아주 다르다.<진주=황규호 기자>
1997-02-1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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