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당과 정치언어/양승현 정치부차장(오늘의 눈)

탈당과 정치언어/양승현 정치부차장(오늘의 눈)

양승현 기자 기자
입력 1996-12-22 00:00
수정 1996-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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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김종필 총재)는 여백이 있는 정치인이다.지난 4·11 총선후 한때 자민련이 흔들릴때도 그는 국회 총재실에서 기자에게 담담하게 내심을 토해냈다.『역리란 언제나 화려하게 보이지만,답답한 순리를 이기진 못하는 법이요』

그의 정치인으로서의 운치는 그가 구사하는 말과 무관하지 않다.스스로도 즐기는 편에 속한다.올해의 「부대심청한(욕심이 없으면 마음이 한가롭다)」,내년의 「줄탁동기(병아리가 알에서 나올 때 어미닭이 알맞은 시간에 껍질을 쪼아준다)」와 같이 해마다 연초때 내놓는 신년휘호도 고풍스럽다.

지난해 자민련 창당후 첫 국회 대표연설에서는 말미에 『사랑은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는 소설구를 인용,「역시 JP」라는 평가를 받았었다.

그런 JP가 최각규 강원지사와 강원지역 두 자민련의원의 탈당이후 언어 선택에 균형을 잃고 있다.뒤틀린 심사는 십분 이해 되지만,어쩐지 정치지도자의 상궤를 벗어난 듯 보인다.

그는 지난 20일 상오 세종문회회관에서 열린 청년위원회 창립대회에서 최지사를 『권력에 기생한 더러운 배신자』라고일반인도 쓰기 어려운 욕설을 해댔다.또 『권력이 막가고 있다.이번 사태는 부도덕하고 천인공로할 파렴치한 공작정치로 스스로 죽음의 구덩이를 파는 죄악』이라고 시정의 「막말」에 가까운 언어를 구사했다.

어디에도 「포용과 애정」이라는 JP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말의 맛깔스러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절제된 여백의 실종이었다.이날 하오 후원회에 참석한 뒤 경기지역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약한 짓을 한사람이 두다리를 뻗고자는데,이 땅에 천도가 있느냐』라고 정부·여당을 마구 힐란했다.

물론 명분없는 정치인의 탈당이라면 비난받아 마땅하다.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번 탈당사태로 흥분한 JP가 그만의 멋스러움까지 잃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JP의 말만 그런 것이 아니다.21일 자민련은 당사앞에서 「탈당자 화형식」을 가졌다.이날 국민회의는 당간부회의를 「야당파괴 및 지자제파괴저지대책위」로 전환했다.「화형식」 「파괴」 등의 용어가 야권의 울분을 나타내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번 탈당사태에 대해 냉철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전해주는 「정치언어」는 아닌 것 같다.
1996-12-22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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