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브라이트 장학금.아직도 「6·25」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던 60∼70년대 한국지식인 사회에서는 「꿈의 장학금」이었다.지금처럼 각종재단이 지원하는 장학금이 많은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자기 돈으로 미국유학을 갈수 있었던 시대도 아니었기 때문에 풀브라이트장학금은 누구나 그리는 선망의 대상이 아닐수 없었다.
교육과 문화의 교류를 통해 미국인과 다른 나라 사람사이의 상호이해를 증진시키기위한 이 프로그램이 시작된 것은 1946년.당시 미 상원의원이었던 윌리엄 풀브라이트 의원의 제안에 의해서였다.
한국에서 이 장학사업이 시작된 것은 1960년.그이래 학계 언론계 법조계 등 주로 사회과학분야에서 매년 30여명이 이 장학금을 받아 미국유학을 다녀왔다.금년에 떠난 35명을 포함,우리나라의 풀브라이트장학금 수혜자는 모두 9백85명.각계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있다.한승수 재경부총리,권오기 통일부총리도 풀브라이트 출신이다.
금년이 풀브라이트 장학금 50주년이되는 해라고해서 미국은 물론 각국에서 기념행사와 기념사업들이 펼쳐지고 있다.그중에서도 돋보이는게 일본에서 추진하고있는 프로그램이다.풀브라이트 장학생이 6천5백여명이나 되는 일본의 정부는 풀브라이트계획이 「일본에 끼친 커다란 공로에 대한 보은」으로 미국의 각급 학교 교사 및 교육관련 공무원등 5천명을 5년에 걸쳐 일본에 초청할 방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전역의 교사,공무원들을 매년 1천명씩 선발해 일본의 문화 및 교육현장을 돌아보게 하겠다는 것.그중에서도 재미있는 것은 일본을 방문하는 미국교사들은 연수기간중 최소 2∼4주동안 일본인 가정에서 민박을 하도록하는 계획.일본의 생활문화를 직접 체험케 하려는 야심찬 프로그램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이와 비슷한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이 없다.흥청망청 과소비할 돈이 있으면 못할 리도 없는데<임춘웅 논설위원>
교육과 문화의 교류를 통해 미국인과 다른 나라 사람사이의 상호이해를 증진시키기위한 이 프로그램이 시작된 것은 1946년.당시 미 상원의원이었던 윌리엄 풀브라이트 의원의 제안에 의해서였다.
한국에서 이 장학사업이 시작된 것은 1960년.그이래 학계 언론계 법조계 등 주로 사회과학분야에서 매년 30여명이 이 장학금을 받아 미국유학을 다녀왔다.금년에 떠난 35명을 포함,우리나라의 풀브라이트장학금 수혜자는 모두 9백85명.각계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있다.한승수 재경부총리,권오기 통일부총리도 풀브라이트 출신이다.
금년이 풀브라이트 장학금 50주년이되는 해라고해서 미국은 물론 각국에서 기념행사와 기념사업들이 펼쳐지고 있다.그중에서도 돋보이는게 일본에서 추진하고있는 프로그램이다.풀브라이트 장학생이 6천5백여명이나 되는 일본의 정부는 풀브라이트계획이 「일본에 끼친 커다란 공로에 대한 보은」으로 미국의 각급 학교 교사 및 교육관련 공무원등 5천명을 5년에 걸쳐 일본에 초청할 방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전역의 교사,공무원들을 매년 1천명씩 선발해 일본의 문화 및 교육현장을 돌아보게 하겠다는 것.그중에서도 재미있는 것은 일본을 방문하는 미국교사들은 연수기간중 최소 2∼4주동안 일본인 가정에서 민박을 하도록하는 계획.일본의 생활문화를 직접 체험케 하려는 야심찬 프로그램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이와 비슷한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이 없다.흥청망청 과소비할 돈이 있으면 못할 리도 없는데<임춘웅 논설위원>
1996-08-2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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