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의 싱크탱크… 「으뜸 서비스」 개발/「거품 제거」 경영정보 제공… 중기 단골 유치 성공/산매 금융전략 세워 그룹의 진로 제시하기도
신한은행은 14년이 갓 넘은 후발은행이지만 연구소의 역사는 선발은행보다 길다.신한은행은 87년 5월 신한종합연구소를 세웠다.시중은행 계열로는 최초의 연구소였다.국민·한일·제일·조흥·외환은행이 연구소를 세운 것은 92∼95년이다.
후발은행이면서 연구소 설립이 선발은행보다 빠르다는 사실은 예사롭게 넘길 일이 아니다.기존은행보다 먼저 영업전략에서 체계적인 연구와 분석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신한종합연구소 설립과 발전에는 이희건 신한은행회장의 부자를 빼놓을 수 없다.연구소를 만든 것부터가 이회장의 뜻이었다.이회장은 『고객들에게 질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은행연구소를 세우는 게 좋다』고 했다.당시 은행들은 고객들에게 저금통이나 주는 정도였지만 이 보다 정보를 주는 게 바람직하다는 얘기였다.
특히 정보수집 능력에서 뒤지는 중소기업 고객에게 정보를 주겠다는 게 목적이었다.88∼89년에는 부산·대구 등 지방을 돌며 중소기업인들에게 경영정보를 설명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요즘 버블(거품)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이 말을 국내에 유행시킨게 신한종합연구소다.신한종합연구소는 91년 「버블경제이론」을 국내 최초로 소개해 경제계에 거품논쟁을 불러 일으키며 정부와 기업의 체질개선 노력을 이끌어냈다.일본의 거품경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낸 신한종합연구소의 히트작이었다.
버블에서 알수 있듯이 신한종합연구소는 국내 연구소 중 일본연구에 가장 탁월하다.재일교포들이 출자해 신한은행을 설립한데다,출범 후부터 친절을 비롯한 일본식 경영기법을 도입하는 등 일본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일본연구 특화는 이회장의 장남인 이승재씨(관서흥은 이사장)의 생각이다.
연구소의 최대기능은 물론 신한은행을 포함한 신한금융그룹의 나가야 할 방향 등을 제시하는 싱크탱크 역할이다.91년 신한종합연구소가 신한은행과 합작으로 「리테일(산매) 금융 전략」을 내놓은 게 성공사례다.
당시 은행들은 일반인들을 위한 산매금융에는 신경쓰지 않았다.자금공급보다는 수요가 훨씬 많던 시절이라 일반고객들에게는 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송연수 신한종합연구소 부소장은 『앞으로 재벌은 은행을 떠나갈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에 개인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영업전략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신한종합연구소에는 50여명의 연구원이 있다.순수한 연구원과 연구소로 파견된 일반직원들이 절반씩이다.은행으로 들어온 직원들이 연구소로 파견되는 시스템은 이회장의 아이디어다.은행원들이 아무생각없이 발로만 뛰는 영업은 바람직하지 않고,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해 활용하는 능력을 키워야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승재씨가 출범 때부터 연구소장을 맡은 것도 연구소의 비중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올초에는 연구소 이사장으로 물러앉았다.그는 도쿄대 경제학부 출신으로 조직론의 전문가다.신한은행 직원들이 로마흥망의 전문가가 된 것은 그 때문이다.조그만 도시국가인 로마가 세계국가로 뻗어나가는 과정을 살펴 후발은행인 신한은행이 성장할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한다는 게 지론이다.
이이사장은 신한은행 출범 후부터 로마흥망을 강의해 왔으며 연구소에서는 연수교재를 만들기도 했다.<곽태헌 기자>
신한은행은 14년이 갓 넘은 후발은행이지만 연구소의 역사는 선발은행보다 길다.신한은행은 87년 5월 신한종합연구소를 세웠다.시중은행 계열로는 최초의 연구소였다.국민·한일·제일·조흥·외환은행이 연구소를 세운 것은 92∼95년이다.
후발은행이면서 연구소 설립이 선발은행보다 빠르다는 사실은 예사롭게 넘길 일이 아니다.기존은행보다 먼저 영업전략에서 체계적인 연구와 분석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신한종합연구소 설립과 발전에는 이희건 신한은행회장의 부자를 빼놓을 수 없다.연구소를 만든 것부터가 이회장의 뜻이었다.이회장은 『고객들에게 질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은행연구소를 세우는 게 좋다』고 했다.당시 은행들은 고객들에게 저금통이나 주는 정도였지만 이 보다 정보를 주는 게 바람직하다는 얘기였다.
특히 정보수집 능력에서 뒤지는 중소기업 고객에게 정보를 주겠다는 게 목적이었다.88∼89년에는 부산·대구 등 지방을 돌며 중소기업인들에게 경영정보를 설명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요즘 버블(거품)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이 말을 국내에 유행시킨게 신한종합연구소다.신한종합연구소는 91년 「버블경제이론」을 국내 최초로 소개해 경제계에 거품논쟁을 불러 일으키며 정부와 기업의 체질개선 노력을 이끌어냈다.일본의 거품경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낸 신한종합연구소의 히트작이었다.
버블에서 알수 있듯이 신한종합연구소는 국내 연구소 중 일본연구에 가장 탁월하다.재일교포들이 출자해 신한은행을 설립한데다,출범 후부터 친절을 비롯한 일본식 경영기법을 도입하는 등 일본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일본연구 특화는 이회장의 장남인 이승재씨(관서흥은 이사장)의 생각이다.
연구소의 최대기능은 물론 신한은행을 포함한 신한금융그룹의 나가야 할 방향 등을 제시하는 싱크탱크 역할이다.91년 신한종합연구소가 신한은행과 합작으로 「리테일(산매) 금융 전략」을 내놓은 게 성공사례다.
당시 은행들은 일반인들을 위한 산매금융에는 신경쓰지 않았다.자금공급보다는 수요가 훨씬 많던 시절이라 일반고객들에게는 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송연수 신한종합연구소 부소장은 『앞으로 재벌은 은행을 떠나갈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에 개인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영업전략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신한종합연구소에는 50여명의 연구원이 있다.순수한 연구원과 연구소로 파견된 일반직원들이 절반씩이다.은행으로 들어온 직원들이 연구소로 파견되는 시스템은 이회장의 아이디어다.은행원들이 아무생각없이 발로만 뛰는 영업은 바람직하지 않고,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해 활용하는 능력을 키워야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승재씨가 출범 때부터 연구소장을 맡은 것도 연구소의 비중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올초에는 연구소 이사장으로 물러앉았다.그는 도쿄대 경제학부 출신으로 조직론의 전문가다.신한은행 직원들이 로마흥망의 전문가가 된 것은 그 때문이다.조그만 도시국가인 로마가 세계국가로 뻗어나가는 과정을 살펴 후발은행인 신한은행이 성장할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한다는 게 지론이다.
이이사장은 신한은행 출범 후부터 로마흥망을 강의해 왔으며 연구소에서는 연수교재를 만들기도 했다.<곽태헌 기자>
1996-08-09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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