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면 깎아 막사 설치… 산사태에 무방비
경기·강원 지역에 사흘째 내린 집중호우로 젊은 장병 46명이 산사태로 매몰되거나 급류에 휘말려 목숨을 잃어 창군이래 최대의 군 피해를 기록했다.이처럼 군의 비 피해가 컸던 이유는 뭘까.
연이틀 계속된 군의 대참변은 우선 천재인 집중호우 때문이다.
하루 5백㎜ 안팎의 폭우로 전술목적으로 경사면을 깎아내거나 나무를 베어낸 산간지역의 산사태는 불가피했다고 볼 수 있다.더욱이 적으로부터 몸을 숨기기 위해 파놓는 참호는 집중호우 때 저수지 역할을 해 산사태를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군 부대시설의 구조적인 취약성도 한몫했다.전방부대 시설은 북한군을 경계하기 위해 일정한 간격을 두어야 하는 만큼 안전지대에 지을 수 없다.대부분 산악지역에 시설을 설치한다.
유사시 병력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적의 수류탄이나 전투기 및 야포,박격포 공격을 피하기 위해 막사를 평지 등 개활지에 짓는 경우는 드물다.대개 산의 바로 아래 2부능선쯤에 산을 깎아내고 막사 등 시설물을 짓고 있다.군 피해가 난 대부분 지역이 이같은 지형에 막사가 설치돼 있어 산사태에는 거의 무방비 상태로 참사를 겪어야 했다.
게다가 군 막사의 경우 적게는 5∼6명,많게는 30∼40명의 장병이 생활하기 때문에 산사태로 매몰되면 피해가 커질 수 밖에 없다.
전방에 짓는 막사는 후방지역의 영구막사와는 달리 신속한 부대이동과 주둔을 고려,시멘트 블록보다 내구력이 약한 철제 조립식으로 짓는다.흙더미가 순식간에 덮칠 경우 두께 0.5∼1㎜의 종이장 같은 철판은 종이처럼 구겨지게 돼있다.
이같은 군 시설의 취약성말고도 장마철 안전점검 소홀도 피해를 크게 한 이유로 꼽힌다.26일 새벽 21명의 희생을 낸 철원군 철책선부대 내무반 막사 매몰사고만 보더라도 호우경보가 내려진 이날 새벽 상급부대의 안전점검 지시를 충실히 이행해 산사태 여부를 지속적으로 관찰했다면 잠자던 군인들을 미리 대피시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후조치도 미흡했다.육군은 26일에 이어 27일에도 산사태와 침수가 잇따르자 산사태가 우려되는 군 부대는 인근 개활지로 부대를 이동,천막을 치고 이동하라고 뒤늦은 지시를 내렸다.26일 사고 직후 이같은 지시가 내려졌다면 인명피해는 줄일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이밖에 수재로 군 통신망이 완전마비,피해상황이 즉각 전파되지 않는 바람에 구조활동이 지연된 점도 희생자를 늘린 원인이 됐다.〈황성기 기자〉
경기·강원 지역에 사흘째 내린 집중호우로 젊은 장병 46명이 산사태로 매몰되거나 급류에 휘말려 목숨을 잃어 창군이래 최대의 군 피해를 기록했다.이처럼 군의 비 피해가 컸던 이유는 뭘까.
연이틀 계속된 군의 대참변은 우선 천재인 집중호우 때문이다.
하루 5백㎜ 안팎의 폭우로 전술목적으로 경사면을 깎아내거나 나무를 베어낸 산간지역의 산사태는 불가피했다고 볼 수 있다.더욱이 적으로부터 몸을 숨기기 위해 파놓는 참호는 집중호우 때 저수지 역할을 해 산사태를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군 부대시설의 구조적인 취약성도 한몫했다.전방부대 시설은 북한군을 경계하기 위해 일정한 간격을 두어야 하는 만큼 안전지대에 지을 수 없다.대부분 산악지역에 시설을 설치한다.
유사시 병력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적의 수류탄이나 전투기 및 야포,박격포 공격을 피하기 위해 막사를 평지 등 개활지에 짓는 경우는 드물다.대개 산의 바로 아래 2부능선쯤에 산을 깎아내고 막사 등 시설물을 짓고 있다.군 피해가 난 대부분 지역이 이같은 지형에 막사가 설치돼 있어 산사태에는 거의 무방비 상태로 참사를 겪어야 했다.
게다가 군 막사의 경우 적게는 5∼6명,많게는 30∼40명의 장병이 생활하기 때문에 산사태로 매몰되면 피해가 커질 수 밖에 없다.
전방에 짓는 막사는 후방지역의 영구막사와는 달리 신속한 부대이동과 주둔을 고려,시멘트 블록보다 내구력이 약한 철제 조립식으로 짓는다.흙더미가 순식간에 덮칠 경우 두께 0.5∼1㎜의 종이장 같은 철판은 종이처럼 구겨지게 돼있다.
이같은 군 시설의 취약성말고도 장마철 안전점검 소홀도 피해를 크게 한 이유로 꼽힌다.26일 새벽 21명의 희생을 낸 철원군 철책선부대 내무반 막사 매몰사고만 보더라도 호우경보가 내려진 이날 새벽 상급부대의 안전점검 지시를 충실히 이행해 산사태 여부를 지속적으로 관찰했다면 잠자던 군인들을 미리 대피시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후조치도 미흡했다.육군은 26일에 이어 27일에도 산사태와 침수가 잇따르자 산사태가 우려되는 군 부대는 인근 개활지로 부대를 이동,천막을 치고 이동하라고 뒤늦은 지시를 내렸다.26일 사고 직후 이같은 지시가 내려졌다면 인명피해는 줄일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이밖에 수재로 군 통신망이 완전마비,피해상황이 즉각 전파되지 않는 바람에 구조활동이 지연된 점도 희생자를 늘린 원인이 됐다.〈황성기 기자〉
1996-07-29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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