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석탄산업/부와 침

국내 석탄산업/부와 침

입력 1996-07-15 00:00
수정 1996-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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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년­10여년 전성기 연탄파동으로 주춤/73년­12월 석유파동… 제2 부흥기 구가/88년­「합리화 정책」으로 다시 쇠락의 길로

모든 산업은 시대상황에 따라 부침을 거듭한다.석탄산업도 굴곡이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석탄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일제시대인 1930년대.철도로 연결된 평양인근의 사동탄광이 국내 최초로 개발되고 남한에서는 문경탄전의 개발이 시작됐다.

당시에도 장성과 도계의 삼척탄좌 매장량이 풍부한 것은 알았지만 수송수단이 없어 개발은 엄두도 못냈다.그러다 묵호∼철암간 철도와 묵호항 건설이 병행되고 일본으로 수출 길이 열리면서 이곳 탄전이 빛을 본다.

해방이후 일본인들이 물러가자 국내 탄광은 시련을 겪는다.수송수단이 충분하지 못해 장성·도계의 탄은 해상을 통해 겨우 주소비지인 경인지역으로 연결됐기 때문이다.

1956년 철암∼영주간 영암선이 개통되며 국내 석탄산업은 66년까지 제1의 전성기를 맞는다.10년사이 공급량은 무려 5배 늘어난다.특히 60년대 전반에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에너지 자급자족 계획이진행되면서 석공은 당시 매출액이 국내 1·2위를 다툴 정도로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다 66년 연탄파동이 일어나면서 석탄산업은 하강국면을 맞는다.연탄수용가인 대도시에 연탄을 제때 공급하지 못해 값이 치솟는 등 파동이 일어나자 정부가 에너지정책을 석유로 전환했기 때문이다.2백여개에 이르던 광산이 50∼60여개로 줄어든다.

제2의 부흥기는 73년 12월 석유파동이 일면서 찾아왔다.유가가 폭등하면서 석탄수요가 급증,광산촌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70년대 두차례 파동을 겪은 석유가 80년대들어 가격이 안정세를 보이고 88년 정부가 경제성있는 탄광만 육성하겠다는 것을 골자로 한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석탄산업은 다시 쇠락의 길을 걷게 돼 오늘에 이른다.

제3의 부흥기가 있을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석공은 현재 1억3천4백만t의 가채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30년정도 쓸수 있는 물량이다.현재 전세계적으로 연료로는 석유와 가스를 쓰고 있지만 30년과 50년이 지나면 소진되고 만다.인구대국인 중국과 인도에서 석유와가스사용이 보편화되면 고갈속도는 훨씬 빨라진다.

석탄은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유일의 에너지원이다.태평양전쟁은 석유공급 중단을 우려한 일본이 미국에 대해 선제공격을 가하면서 시작됐다.에너지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부분이다.대체에너지가 개발되지 않으면 석탄은 다시 빛을 보게 될지 모른다.
1996-07-15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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