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북한남침 막았기에 이런 재판도 열린것”/허화평씨,국회선서 할수있게 구속정지 간청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에 관한 첫 반대신문이 열린 3일의 11차 공판에서 전두환피고인은 시종일관 「안보논리」로 5·17조치의 정당성을 역설했다.12·12사건 반대신문은 이 날 상오 공판에서 모두 끝났다.
○…전피고인은 5·17사건 첫 반대신문에서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이건영 3군사령관 등 정승화계열의 장성들이 합수부의 조사과정에서 『정총장의 연행배경을 오해하고 12·12때 병력을 동원했다』고 진술해 관용을 베풀었다고 주장.
전피고인은 또 검찰측이 사용하는 「신군부」라는 용어는 지난 88년 5공 청산문제가 대두되면서 정치권이 만들어 낸 신조어라며 『신군부 세력이 12·12사건 이후에 군주도권을 장악한 뒤 내란을 주도했다』는 검찰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잘못됐다고 지적.
○…이양우 변호사는 극심한 학원소요 등으로 80년 5월의 시국상황은 「무정부 상태」로 치달았다고 설명하면서 『당시 정국과 사회가 안정돼 있었다』는 검찰측의 주장을반박.
○…전피고인은 80년 5월의 시국수습 방안의 정당성을 역설하면서 안보논리를 지나치게 강조,오버 페이스 했다는 지적이 일기도.
전피고인은 『당시 북괴의 남침을 막았기 때문에 오늘 이처럼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좋은 나라를 만들었다』고 말해,자신이 법정에 선 것과 자신의 과거 업적을 연결시키는 논리적인 비약도 전개.
○…피고인 중 유일하게 15대 총선에서 당선된 허화평피고인은 『오는 5일 국회개원식에서 선서를 할 수 있도록 2∼3일만이라도 풀어달라』고 재판부에 구속집행 정지를 간청.
허피고인의 변호인인 김재철 변호사도 『수십만의 지역주민들에 의해 선량으로 뽑혔는데 실제로 의정활동을 못하더라도 선서만큼은 하게 해 달라』고 거듭 요청.
○…장세동피고인은 반대신문에서 당시 직속상관이던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정총장을 원색적인 용어로 싸잡아 비난.
장수경사령관의 경복궁 포격지시와 관련,『반란행위 이상의 정신이상 상태에서 명령을 내렸다』고 인신공격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으며 정총장에 대해서는 「무책임한 기회주의자」,『총장의 직분에 걸맞지 않은 추한 모습을 보였다』고 극언.
장피고인은 특히 정총장을 겨냥해 『12·12사건의 원인제공자이며 검찰의 이중잣대와 헌재의 이중판결,5·18특별법의 소급입법 등 나라의 어리석은 꼴을 있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모든 책임을 전가하며 맹공.
그러나 자신이 5공 청산과정과 신민당 창당방해 사건 등으로 세번 구속된 사실과 관련해서는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느냐.결과적으로 역사의 발전과정으로 생각한다』고 변명.
○…이양우 변호사는 『5·17사건과 관련해 전피고인에 대한 신문항목은 8백∼9백여개』라며 4백여 항목이었던 12·12사건보다 곱절이 넘는다고 소개.
○…12·12 및 5·18사건 재판에 대한 관심이 공판횟수가 늘어날 수록 현격히 줄어드는 추세.
이날 상오 방청권을 배포한 서울지법 정문에는 5·18관련 재야단체 관계자 20여명만이 눈에 띄는 등 썰렁한 분위기.〈박은호·김성수·김상연 기자〉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에 관한 첫 반대신문이 열린 3일의 11차 공판에서 전두환피고인은 시종일관 「안보논리」로 5·17조치의 정당성을 역설했다.12·12사건 반대신문은 이 날 상오 공판에서 모두 끝났다.
○…전피고인은 5·17사건 첫 반대신문에서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이건영 3군사령관 등 정승화계열의 장성들이 합수부의 조사과정에서 『정총장의 연행배경을 오해하고 12·12때 병력을 동원했다』고 진술해 관용을 베풀었다고 주장.
전피고인은 또 검찰측이 사용하는 「신군부」라는 용어는 지난 88년 5공 청산문제가 대두되면서 정치권이 만들어 낸 신조어라며 『신군부 세력이 12·12사건 이후에 군주도권을 장악한 뒤 내란을 주도했다』는 검찰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잘못됐다고 지적.
○…이양우 변호사는 극심한 학원소요 등으로 80년 5월의 시국상황은 「무정부 상태」로 치달았다고 설명하면서 『당시 정국과 사회가 안정돼 있었다』는 검찰측의 주장을반박.
○…전피고인은 80년 5월의 시국수습 방안의 정당성을 역설하면서 안보논리를 지나치게 강조,오버 페이스 했다는 지적이 일기도.
전피고인은 『당시 북괴의 남침을 막았기 때문에 오늘 이처럼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좋은 나라를 만들었다』고 말해,자신이 법정에 선 것과 자신의 과거 업적을 연결시키는 논리적인 비약도 전개.
○…피고인 중 유일하게 15대 총선에서 당선된 허화평피고인은 『오는 5일 국회개원식에서 선서를 할 수 있도록 2∼3일만이라도 풀어달라』고 재판부에 구속집행 정지를 간청.
허피고인의 변호인인 김재철 변호사도 『수십만의 지역주민들에 의해 선량으로 뽑혔는데 실제로 의정활동을 못하더라도 선서만큼은 하게 해 달라』고 거듭 요청.
○…장세동피고인은 반대신문에서 당시 직속상관이던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정총장을 원색적인 용어로 싸잡아 비난.
장수경사령관의 경복궁 포격지시와 관련,『반란행위 이상의 정신이상 상태에서 명령을 내렸다』고 인신공격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으며 정총장에 대해서는 「무책임한 기회주의자」,『총장의 직분에 걸맞지 않은 추한 모습을 보였다』고 극언.
장피고인은 특히 정총장을 겨냥해 『12·12사건의 원인제공자이며 검찰의 이중잣대와 헌재의 이중판결,5·18특별법의 소급입법 등 나라의 어리석은 꼴을 있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모든 책임을 전가하며 맹공.
그러나 자신이 5공 청산과정과 신민당 창당방해 사건 등으로 세번 구속된 사실과 관련해서는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느냐.결과적으로 역사의 발전과정으로 생각한다』고 변명.
○…이양우 변호사는 『5·17사건과 관련해 전피고인에 대한 신문항목은 8백∼9백여개』라며 4백여 항목이었던 12·12사건보다 곱절이 넘는다고 소개.
○…12·12 및 5·18사건 재판에 대한 관심이 공판횟수가 늘어날 수록 현격히 줄어드는 추세.
이날 상오 방청권을 배포한 서울지법 정문에는 5·18관련 재야단체 관계자 20여명만이 눈에 띄는 등 썰렁한 분위기.〈박은호·김성수·김상연 기자〉
1996-06-04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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