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교육 110년(외언내언)

여성교육 110년(외언내언)

임영숙 기자 기자
입력 1996-05-31 00:00
수정 1996-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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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조상의 이름자나 알아 볼 정도면 충분하며 문필이 공교하고 시서를 잘 짓는 일은 창기나 할 일이고 사대부의 아녀자가 행할 일이 못된다』고 조선조의 석학 퇴계 이황은 말했다.심지어는 사회개혁에 앞장섰던 18세기 실학자 이익도 『독서와 강의는 장부의 일이요 부인은 조석한서에 따라 가족을 공양하며 제사와 손님을 받들어야 하는 일이 있으니 어느 겨를에 책을 대하여 풍송할 수 있으리오』라고 여성교육에 반대했다.

이런 전통속에서 한국의 여성교육이 1백10년전 오늘 시작됐다.미국 선교사 메리 스크랜턴 여사가 정동 자택에서 한 명의 여성을 가르치기 시작,오늘의 이화여고와 이화여대의 뿌리를 내리게 한 것이다. 이화의 첫 학생은 고관의 소실로 김씨 성을 가진 부인.영어를 배워 왕비의 통역이 되고자 했던 그는 병이 들어 석달만에 떠났고 그 다음엔 병들거나 돈이 없어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다 가르칠만큼 여성교육의 첫걸음은 순조롭지 못했다.이듬해 고종황제가 이화학당이란 이름을 하사했고 이화학당은 결국 한국 여성교육 최고의 전당으로 성장했다.지금까지 이화를 통해 배출된 여성인력은 10만여명.한국최초의 여의사(김점동),최초의 여성박사(김활란),최초의 여성변호사(이태영)등 「한국최초」의 칭호를 받은 여성들이 그 속에 수두룩하게 들어 있음은 물론이다.그뿐인가.이화졸업생과 결혼한 「이화사위」를 한자리에 모으면 대한민국의 핵심인물들이 다 모이게 된다.

그러나 빛나는 역사와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화여대는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남녀공학을 선호하는 세계적 추세속에서 지원학생들이 줄어 들어 몇년전에는 미달사태를 빚기까지 했다.최근 대학평가에서 전국 1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대학을 기피하는 여고생들의 태도엔 별다른 변화가 없다.여성지도자교육기관으로서 여자대학을 고수할 것인가 남녀공학으로 변신할 것인가의 기로에 이화여대는 서 있는 셈이다.여성교육 1백10년을 축하하며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이화여대에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1996-05-31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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