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방울 눈·굳게 다문 입에 정감이…/훤칠한 키·비껴쓴 벙거지에 멋도 잔뜩
제주도의 돌하루방은 육지로 말하면 돌장승이다.옛날 기록에는 돌하루방을 일러 옹중석이라했다.돌하루방은 돌할아버지라는 뜻을 가진 제주도 사투리다.어린 아이들이 돌하루방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 이름으로 굳어버렸다.어딘가에 정감이 어린 이름이기도 하거니와 실제 돌하루방에서는 온화스럽고 푸근한 체취가 우러난다.
제주도에 돌하루방이 처름 등장한 시기를 확실히 밝힐 수는 없다.다만 김석익의 「탐라기년」을 보고 어렴풋 짐작할 뿐이다.영조30년(1754년) 김몽규가 성문밖에 세웠다는 기록이 그것이다.그는 당시 제주 방어사로 전해인 영조29년에 관덕정(보물 322호)을 중창한 인물이기도 하다.그러나 전에도 있었는 데 다시 세운 것인지,또 처음 새로 세운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어떻든 「탐라기년」을 18세기 중엽 제주에 돌하루방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일러주고 있다.제주도내에 옛날부터 전해내려온 돌하루방은 현재 45기에 이른다.모두 제주도 민속자료2호로 지정 받았다.제주목과 대정현,정의현을 행정구역으로 한 조선시대 제주 삼현소재지에 집중 분포되었다.그래서 제주시내에 21기,대정면 인성·안성·보성리와 표선면 성읍리에 각각 12기씩이 남아있는 것이다.
옛 제주성 성문밖이 본래 제자리였던 제주시 돌하루방은 시내 여러 군데로 뿔뿔히 흩어졌다.제주시의 돌하루방은 대정면이나 표선면 성읍리 것들에 비해 우선 키가 크다.평균치가 1백80㎝를 넘는 훤칠한 키를 했다.그리고 대정면 돌하루방과는 달리 기단을 밟고 서 있다.제주도 돌하루방 하면 얼핏 그것이 그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지역 단위로 특성을 지닌터라 지역별로 비교하면 조금씩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제주시 이도1동을 지키고 있는 돌하루방은 아주 멋이 든 돌할아버지다.제주시 이도1동은 제주목의 제주성 옛 터전인지라 이 돌하루방이야 말로 적자격의 돌하루방이라 할 수 있다.제주도 섬 전체의 돌하루방이 그렇듯 벙거지를 썼으나 멋을 부려 비스듬이 머리에 걸쳤다.닷새장 저자거리에 나갔다가 거나하게 한잔을 하고 손자 주전부리를 사들고 오는 흐뭇한 할아버지 얼굴이다.
퉁방울눈은 이를데 없이컸다.눈이 하도 커서 눈을 만드느라 오목새김한 가장자리 선각이 자루병처럼 생긴 코와 아주 닿아버렸다.병자루 같이 생긴 코허리는 물론 코방울에까지 눈 가장자리가 맞물렸으니 크기는 큰 눈이다.역시 선각으로 표시한 큰 입을 굳게 다물었다.위엄을 갖춘 얼굴은 분명한데 무섭기 보다는 온화한 쪽에 비중을 더 실었다.그러니까 아주 인간화한 섬의 돌장승이 돌하루방일 것이다.
돌하루방을 성문밖에 세웠다는 기록과 본래의 자리 성문 앞길이 방어상 유리한 S자형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육지의 장승들처럼 돌하루방 또한 수호신 기능이 부여되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황규호 기자〉
제주도의 돌하루방은 육지로 말하면 돌장승이다.옛날 기록에는 돌하루방을 일러 옹중석이라했다.돌하루방은 돌할아버지라는 뜻을 가진 제주도 사투리다.어린 아이들이 돌하루방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 이름으로 굳어버렸다.어딘가에 정감이 어린 이름이기도 하거니와 실제 돌하루방에서는 온화스럽고 푸근한 체취가 우러난다.
제주도에 돌하루방이 처름 등장한 시기를 확실히 밝힐 수는 없다.다만 김석익의 「탐라기년」을 보고 어렴풋 짐작할 뿐이다.영조30년(1754년) 김몽규가 성문밖에 세웠다는 기록이 그것이다.그는 당시 제주 방어사로 전해인 영조29년에 관덕정(보물 322호)을 중창한 인물이기도 하다.그러나 전에도 있었는 데 다시 세운 것인지,또 처음 새로 세운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어떻든 「탐라기년」을 18세기 중엽 제주에 돌하루방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일러주고 있다.제주도내에 옛날부터 전해내려온 돌하루방은 현재 45기에 이른다.모두 제주도 민속자료2호로 지정 받았다.제주목과 대정현,정의현을 행정구역으로 한 조선시대 제주 삼현소재지에 집중 분포되었다.그래서 제주시내에 21기,대정면 인성·안성·보성리와 표선면 성읍리에 각각 12기씩이 남아있는 것이다.
옛 제주성 성문밖이 본래 제자리였던 제주시 돌하루방은 시내 여러 군데로 뿔뿔히 흩어졌다.제주시의 돌하루방은 대정면이나 표선면 성읍리 것들에 비해 우선 키가 크다.평균치가 1백80㎝를 넘는 훤칠한 키를 했다.그리고 대정면 돌하루방과는 달리 기단을 밟고 서 있다.제주도 돌하루방 하면 얼핏 그것이 그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지역 단위로 특성을 지닌터라 지역별로 비교하면 조금씩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제주시 이도1동을 지키고 있는 돌하루방은 아주 멋이 든 돌할아버지다.제주시 이도1동은 제주목의 제주성 옛 터전인지라 이 돌하루방이야 말로 적자격의 돌하루방이라 할 수 있다.제주도 섬 전체의 돌하루방이 그렇듯 벙거지를 썼으나 멋을 부려 비스듬이 머리에 걸쳤다.닷새장 저자거리에 나갔다가 거나하게 한잔을 하고 손자 주전부리를 사들고 오는 흐뭇한 할아버지 얼굴이다.
퉁방울눈은 이를데 없이컸다.눈이 하도 커서 눈을 만드느라 오목새김한 가장자리 선각이 자루병처럼 생긴 코와 아주 닿아버렸다.병자루 같이 생긴 코허리는 물론 코방울에까지 눈 가장자리가 맞물렸으니 크기는 큰 눈이다.역시 선각으로 표시한 큰 입을 굳게 다물었다.위엄을 갖춘 얼굴은 분명한데 무섭기 보다는 온화한 쪽에 비중을 더 실었다.그러니까 아주 인간화한 섬의 돌장승이 돌하루방일 것이다.
돌하루방을 성문밖에 세웠다는 기록과 본래의 자리 성문 앞길이 방어상 유리한 S자형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육지의 장승들처럼 돌하루방 또한 수호신 기능이 부여되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황규호 기자〉
1996-04-2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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