홧병(외언내언)

홧병(외언내언)

송정숙 기자 기자
입력 1996-04-03 00:00
수정 1996-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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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홧병」이라는 병이 있다.대대로 내려온 문전옥답을 아들이 미두로 날리자 늙은 아버지가 홧병으로 몸져눕기도 했고,징용끌려간 아들의 소식이 끊긴 이후 「가슴에 화가 든」 어머니는 마침내 그 홧병으로 돌아가 시기도 한 기억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다 이긴줄 알았던 선거에서 상대후보의 흑색선전에 걸려 떨어진 국회의원 출마자에게서도,동업자의 배신으로 사업에 실패한 중년가장에게서도 이 병은 나타날 수 있다.어쨌든 우리에게는 「화병」이 낯설지 않은데 이 병이 한국인에게만 있는 특이한,새로운 정신병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고 한다.

명예스러울 것은 없으나 듣기에 신기하기는 하다.그러나 이것이 한국인에게만 있는 정신병성이라는 이론에는 납득이 잘 안된다.화가 쌓이면 가슴에 불을 붓는 것같은 증상이 일어나는 것은 인간이 공통으로 지닌 증상이 아닐까? 지역이나 기후에 따른 풍토병은 아닐 것같은 생각이 든다.

다만 그 증상이 한이 되게 하는 이행과정은 풍토병처럼 독특한 것이 아닌가 싶다.스트레스를 「적절히 해결하는」대신 안으로 쌓아두다가 승화시키는 처리는 분명 우리의 독특함이다.그런 뜻에서 홧병을 여성적 질환으로 특정짓는 일은 유의의한 것같다.이시영박사의 말처럼 시앗을 보거나 시집살이 같은 갈등이 홧병을 만들므로 이 병은 여성에게 많이 일어나는 것이긴 하다.그러나 그보다는 이런 증상이,체념의 과정을 거쳐 한으로 승화되는 경우가 남성에게서는 많지않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이 병이 우리의 정신의학자에 의해 정신질환의 하나로 미국 정신의학계에서 공인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은 국제적 관심을 모은 연구결과일 것이다.그래서 병의 이름도 우리 말대로 음역해서 「Hwapyung」이라고 한다니 국력의 신장까지는 아니라도 우리 정신의학자들의 노력이 결실된 결과로 생각된다.다만 우리의 「화병」은 「홧병」이라야 실감이 나는데 「화병」이라고 하니까 별로 그 병같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송정숙 본사고문〉

1996-04-0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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