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적 성과 거둔 「과거청산」
문민정부의 긍지,그리고 국민지지와 정당성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추진한 개혁운동은 그 접근방법에 있어서 과거와는 구별되는 면모를 보여주었다.몇몇 충격적인 조치들은 국민의 갈채를 받기도 했다.
김영삼 행정부가 추진한 개혁의 중심테마는 정치·경제·사회의 정당성복원과 과거청산으로 집약할수 있다.정당성 복원은 바로 정당하지 못한 과거의 청산을 의미한다.정치·행정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곳에서 정당성을 회복하려는 노력과 그 성과는 두드러진 것이라 할 수 있다.정당성 복원사업은 공직사회의 분위기쇄신에 아주 큰 자극을 주었을 것이다.
정당성 복원은 민주적 원리의 복원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김영삼행정부의 개혁은 권위주의 타파와 민주화라는 기본노선을 걸어왔다.권위주의적 과거의 청산,강압통치의 수단이 되었던 기관들의 축소와 기능제한,작은 정부의 추진,정부규제완화와 국민위주·고객위주의 행정개선 부패응징 등의 분야에서 상당히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현시대의 세계적 변화추세인 세계화·정치화·자치화·민간화·정보화에 능동적 또는 피동적으로 대응하는 노력도 있었다.
세계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기구개편과 관리작용개선이 있었다.정치부문이 예전보다 활성화되어 정치에 의한 정부관료제 통제를 실질화해 나갈 희망을 갖게 되었다.지방자치단체장 선거까지 마쳐 본격적인 지방자치의 시대를 열어놓았다.정치화·자치화의 촉진은 민주주의의 부흥에 연결된 것이다.작은 정부의 추진,정부규제완화,민간위탁확대 등은 민간화를 지향하는 것이었다.지방자치의 진행에 따라 정부부문이 민간의 경영자세를 닮는 측면에서의 민간화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사회전반의 정보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정부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반부패운동에서는 과거에 건드리지 못했던 「소굴」을 파헤치는 과단성을 보이기도 했다.전직대통령들의 「비자금」수사에서 그러한 과단성이 확연했다.내란혐의·군사반란혐의에 대한 소추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문민정부의 개혁적 공적을 인정하지만 그 흠절과 한계를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문민정부의 개혁은 일관성을 잃고 뒤뚱거릴 때가 많았다.정당성 복원과 과거청산에 순수성만을 고집할 수 없는 장애가 많았다.그러한 장애는 생각하기에 따라 치명적일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시간이 흐를수록 과거와의 재유착이라는 경향까지 보이게 되었다.
청산되어야 할 「과거」로 지목되고 포승에 묶여 법정에 출입하던 사람들이 얼마 안 있어 여당공천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게 되는 사례가 우리 정국의 딱한 사정을 상징한다.
문민정부는 과거의 유산을 안고 그 바탕위에서 출범했다는 것,체제화된 부패의 뿌리가 너무 깊다는 것,정당성 복원을 위한 투쟁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정당성 결여의 정권과 기득권으로 유착된 다수와의 투쟁이라는 것등이 현 정부의 장애이며 부채다.과거의 내란세력은 아직도 선거인단 속에 상당히 광범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다.이것은 우리의 현실이며 이 현실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문민정부의 긍지,그리고 국민지지와 정당성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추진한 개혁운동은 그 접근방법에 있어서 과거와는 구별되는 면모를 보여주었다.몇몇 충격적인 조치들은 국민의 갈채를 받기도 했다.
김영삼 행정부가 추진한 개혁의 중심테마는 정치·경제·사회의 정당성복원과 과거청산으로 집약할수 있다.정당성 복원은 바로 정당하지 못한 과거의 청산을 의미한다.정치·행정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곳에서 정당성을 회복하려는 노력과 그 성과는 두드러진 것이라 할 수 있다.정당성 복원사업은 공직사회의 분위기쇄신에 아주 큰 자극을 주었을 것이다.
정당성 복원은 민주적 원리의 복원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김영삼행정부의 개혁은 권위주의 타파와 민주화라는 기본노선을 걸어왔다.권위주의적 과거의 청산,강압통치의 수단이 되었던 기관들의 축소와 기능제한,작은 정부의 추진,정부규제완화와 국민위주·고객위주의 행정개선 부패응징 등의 분야에서 상당히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현시대의 세계적 변화추세인 세계화·정치화·자치화·민간화·정보화에 능동적 또는 피동적으로 대응하는 노력도 있었다.
세계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기구개편과 관리작용개선이 있었다.정치부문이 예전보다 활성화되어 정치에 의한 정부관료제 통제를 실질화해 나갈 희망을 갖게 되었다.지방자치단체장 선거까지 마쳐 본격적인 지방자치의 시대를 열어놓았다.정치화·자치화의 촉진은 민주주의의 부흥에 연결된 것이다.작은 정부의 추진,정부규제완화,민간위탁확대 등은 민간화를 지향하는 것이었다.지방자치의 진행에 따라 정부부문이 민간의 경영자세를 닮는 측면에서의 민간화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사회전반의 정보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정부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반부패운동에서는 과거에 건드리지 못했던 「소굴」을 파헤치는 과단성을 보이기도 했다.전직대통령들의 「비자금」수사에서 그러한 과단성이 확연했다.내란혐의·군사반란혐의에 대한 소추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문민정부의 개혁적 공적을 인정하지만 그 흠절과 한계를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문민정부의 개혁은 일관성을 잃고 뒤뚱거릴 때가 많았다.정당성 복원과 과거청산에 순수성만을 고집할 수 없는 장애가 많았다.그러한 장애는 생각하기에 따라 치명적일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시간이 흐를수록 과거와의 재유착이라는 경향까지 보이게 되었다.
청산되어야 할 「과거」로 지목되고 포승에 묶여 법정에 출입하던 사람들이 얼마 안 있어 여당공천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게 되는 사례가 우리 정국의 딱한 사정을 상징한다.
문민정부는 과거의 유산을 안고 그 바탕위에서 출범했다는 것,체제화된 부패의 뿌리가 너무 깊다는 것,정당성 복원을 위한 투쟁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정당성 결여의 정권과 기득권으로 유착된 다수와의 투쟁이라는 것등이 현 정부의 장애이며 부채다.과거의 내란세력은 아직도 선거인단 속에 상당히 광범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다.이것은 우리의 현실이며 이 현실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1996-02-23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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