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공동개최」 북 진의 뭔가/이대행체육부장(서울논단)

「월드컵 공동개최」 북 진의 뭔가/이대행체육부장(서울논단)

이대행 기자 기자
입력 1996-01-24 00:00
수정 1996-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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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국제축구연맹(FIFA)에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공동개최의사를 타진하는 서한을 보냈다는 사실을 FIFA측으로부터 통보받은 우리정부와 대한축구협회는 북한측의 진의를 파악하느라 애를 쓰고 있다.

문화체육부 등 관계기관에서는 북한측이 남북대화사무국을 외면하고 뒤늦게 FIFA에 대회 유치의사를 밝힌 배경을 알아보느라 분주한 듯 보인다.그리고 이같은 사태가 우리의 월드컵대회 유치운동에 어떻게 작용할지를 차분히 분석하고 있다.

90년 북경아시안게임 때 일이다.

북한은 선수촌 옆에 옥류관이라는 식당을 개업,이른바 「외화벌이」에 나섰었다.평양에서 파견나온 곱상한 처녀접대원(종업원)들이 상냥한 웃음을 읏으며 손님들의 뒤치다꺼리를 했다.

냉면·된장찌개·신선로·잉어회·불고기가 주메뉴인 이 식당에는 맛보다는 값이 싸고 호기심이 동해 우리 선수와 임원,그리고 매스컴관계자들이 자주 찾아가 성황을 이뤘다.

이들 세련된 접대원은 짓궂은 젊은 기자들이 『결혼하자』고 농담을 걸면 『좋지요.그러나 95년 통일이 되면 그때에 결혼합시다』라고 받아넘기곤 했다.

이 처녀들은 김일성주석이 약속한 「95년 남북통일」을 철석같이 믿어 우리를 적지않게 놀라게 했다.

북경 아시안게임에 북한은 50여명의 신원을 알 수 없는 「기자」를 파견했었다.무료로 제공되는 호텔 아침뷔페에는 꾀죄죄한 모습으로 떼지어 몰려와 몇 접시씩을 먹어치우곤 했다.다른 나라 기자들은 이들의 너무나 왕성한 식욕에 몹시 놀라곤 했다.그러나 점심이나 저녁 때 호텔식당에서 이들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나마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대회 중간에 핵심요인 3∼4명만 남기고 모두 북한으로 철수시켰다.

취재와는 거리가 먼 이들은 북한선수가 경기를 하는 체육관에 몰려다니며 응원에 열을 올리거나 「95년 북남통일」이라고 적힌 셔츠를 우리 선수단이나 응원단에게 나누어주는 데 주로 시간을 보냈다.

북한선수도 우리선수를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며 『95년 통일되면 그때 꼭 만나자』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그전까지만 해도 국제대회에서 마주치면 슬그머니 피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태도여서 우리선수는놀라곤 했다.

북경대회가 끝나자 곧바로 평양에서 역사적인 남·북 친선축구대회가 열렸고 그 다음해인 91년에는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등에 남·북한단일팀이 출전,남·북화해무드가 무르익어갔다.

이때 우리정부는 북한이 「남북 스포츠교류」라는 일련의 기만전술로 「95년 통일」이라는 꿈을 북한주민들에게 심어주어 내부불만을 해소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실낱같은 희망으로 그들과의 교류에 응해야만 했다.

그뒤 몇차례의 문화교류를 끝으로 북한은 남한에 대해 맹비난으로 돌아섰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심취한 이른바 「주사파」가 우리 정부의 통일의지를 비난하고 몇몇 대학생이 북한을 방문하는 등 우리정부를 곤욕스럽게 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이런 가운데 94년 김일성주석은 북한주민들에게 빈곤이라는 유산을 물려주고 세상을 떠났다.당연히 북한주민은 주석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다 이뤄진 통일의 꿈이 무산된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그뒤 문을 다시 굳게 닫은 북한은 홍수로 식량난이 가중되자국제사회에 구호의 손길을 내밀었으며 이어 애틀랜타올림픽 참가를 결정했고 이번에는 월드컵축구대회 공동개최의 뜻을 내비췄다.

서울올림픽 공동개최를 외면함은 물론 각종 테러로 올림픽개최를 방해하던 북한이 90년 북경 아시안게임을 기점으로 우리에게 각종 교류를 제의해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시점에서 곰곰 되새겨야 할 것이다.

북한의 이번 제안이 우리의 월드컵유치운동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대회의 경기 일부를 북한지역에서 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FIFA의 현행규정으로는 공동개최란 불가능한 일로 돼 있다.그래서 북한의 의도가 더욱 궁금한 일이다.우리의 대회유치를 혼란스럽게 방해하려는 것이나 아니었으면 좋겠다.
1996-01-24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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