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50년(외언내언)

서울신문 50년(외언내언)

반영환 기자 기자
입력 1995-11-22 00:00
수정 1995-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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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직후 광복의 환희와 함께 이 땅은 거대한 혼돈의 소용돌이였다.36년의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난 백가쟁명의 의견분출은 정당·사회단체의 난립을 가져왔고 이에 따라 신문창간이 줄을 이었다.45년 11월까지 불과 3개월 남짓한 기간에 창간된 신문이 13종.언론의 춘추전국시대였다.

그러나 이들 신문들은 거의 정당·사회단체의 대변지였다.

그런 혼란의 와중에 1945년11월22일 서울신문이 창간되었다.3·1독립운동 33인의 한 분인 민족주의자 오세창을 사장으로,꼿꼿한 기개의 항일 논객 이관구를 주간으로 서울신문은 민족정론지로 출범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일당일파에 기울어지지 않고 언론보도에 공정하고 적확할 것은 물론이려니와 한걸음 나아가 민족총력의 집결,통일과 독립완성의 시급한 요청에 맞추어 단호히 매진하는 동시에…』창간사의 한 구절이다.언론의 중립성·공명성·정확성을 천명한 이 사설은 50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대로 통하는 명제들이다.

창간이후 서울신문이 걸어온 반세기는 현대사의 격동기다.50년 연륜에서 서울신문은 우리언론발전에 신기원을 쌓아 올렸다.

우리나라 신문으로 최초의 조·석간제를 시행했고(49년 8·15)최초의 한글판 신문을 발행,한글문화의 선봉 역할을 다했다.(56년10·18∼60년4·19)6·25전쟁중에는 서울수복이후 포성울리는 서울에서 19일간 진중신문을 발행하는 신화를 남기기도 했다.(51년4·6∼4·24)신문제작의 혁명이라 할 CTS(컴퓨터제작방식)를 처음 도입,가장 먼저 납활자를 버린 것도(85년1·1)서울신문이다.



창간당시의 지향대로 서울신문은 민족 정론지로,민족역량을 집결하여 통일을 대비하는 신문으로 성장해 왔다.오늘 창간을 계기로 서울신문과 자매지 스포츠서울의 모든 기사가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로 공급된다.21세기 세계 일류지로서의 서울신문,그 새로운 신화창조를 50주년의 이 아침에 새로이 다짐한다.<번영환 논설고문>
1995-11-22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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