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릴스크 백야(시베리아 대탐방:49)

노릴스크 백야(시베리아 대탐방:49)

이호정 기자 기자
입력 1995-11-14 00:00
수정 1995-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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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같은 밤」 6월부터 석달 지속/5월말에 축제… 각 학교 방학·직장은 휴가/공장들 백야기간 24시간 3교대 풀가동/불면증 이기려 집집마다 검은색 2중커튼

「백야­너는 나의 꿈을 빼앗았고 나의 달덩이 같은 아내를 빼앗아갔다…」

노릴스크에서 활동중인 시인 발레리 크라베치는 그의 시집 「비의 침묵」에서 백야를 착취의 현상으로 비유했다.「백야」는 북위 60도 이상에서 나타나는 낮과 같은 밤이 3개월 가량 계속되는 자연현상이다.백야를 즐기기 위해 관광객이 일부러 몰려들기도 하지만 노릴스크에서의 백야는 더 이상 관광의 대상은 아니었다.다소 생소한 비유인듯 하지만 크라베치의 이 시구는 70년 이상 계속된 공산학정을 백야에 비유한 것이다.90년대 초까지 노릴스크 시당국과 일부 공산당 간부들이 보여준 비인간적 행위를 백야현상을 들어 고발한 시가 「비의 침묵」이다.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백야」는 자연이 인간에게 베푼 미의 화신이자 인간을 착취하게 한 「근원」이라는 것이다.그는 노릴스크 금속공장의 예를 들었다.백야현상이본격 진행되는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동안 노릴스크 금속공장은 24시간 풀가동 된다.노동자들은 상오 8시와 하오4시,밤12시에 교대근무를 한다.광물자원은 무진장이고 공장은 24시간 돌아가지만 정작 노동자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진다.극단적으로 얘기한다면 백야만 없어도 일상의 착취는 훨씬 덜할 거라는 주장이다.

○일주일동안 축제 계속

노릴스크의 백야는 5월말 「백야축제」에서 시작된다.이 시기에 학교는 방학에 들어가고 부모들은 직장에서 휴가를 얻는다.축제에는 모스크바의 유명시인·화가·가수등 예술가들이 총출동 한다.1주일간 계속되는 축제동안 주민들은 예니세이 강가로 나가 보트놀이와 함께 보드카파티에 몰입한다.가장 많은 넨슈족등 소수민족들은 그들대로 「민속 축제」를 마련한다.대낮에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것도 백야기간에는 대부분 용서를 받는다.

백야현상이 절정을 이루는 6월22일.하지에 해당하는 이날 노릴스크주민들은 특별한 행사를 갖는다.동이 틀 새벽 3시쯤 주민들은 모두 집 밖으로 나온다.어른들은 집가까운 곳에서 찬물을 가득 담은 접시를 손에들고 공터에 모인다.그리고는 각각 동이 트기 시작한다고 생각되는 시각에서 두 손을 모으거나 어떤 이는 땅에 엎드려 절을 한다.모두들 가족들이 건강하고 재산을 많이 모으게 해달라고 기원한다는 것이다.「의샤흐」라는 이 행사는 백야현상이 있는 시베리아 북부에 수백년된 풍습으로 남아있는 일종의 자연신 숭배사상이었다.

각 가정의 방에는 두껍고 검은 2중천으로 된 커튼을 마련하고 있다.이는 호텔 객실도 마찬가지다.2∼3개월동안 대낮 같은 밤이 계속되면서 불면증을 이기기 위한 방편이다.통상의 얇은 커튼으로는 잠을 제대로 잘수 없기 때문이다.노릴스크시에 시계탑이 많은 것도 백야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시내 곳곳 시계탑 많아

낮과 같은 밤이 오랫동안 계속되면서 사람들은 시간관념을 잊기 쉽기 때문이다.취재진도 같은 경험을 했다.취재를 계속하다 시계탑들을 올려다 보면 시계는 새벽2시,3시를 가리킨 적이 흔했다.

취재진이 크라베치의 시 「백야」의 내용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찾은 곳은 러시아금속회사 산하의 노릴스크 구리공장.밤12시가 넘어 교대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주변 산들은 백야를 배경으로 엷은 청록색을 띠며 또렷이 시야에 들어왔다.안내자는 『이곳이 하루에 구리 8백t을 생산하는 세계 최대의 구리공장』이라면서 기꺼이 공장안까지 안내했다.공장의 시설은 대단했다.구리·니켈원석 4천t을 한꺼번에 담아내는 5층 이상 높이의 거대한 용광로에 몸이 화끈거렸다.원석에는 구리가 21%,니켈이 1.5%가 섞여있으며 마지막 공정의 구리는 순도가 99.23%라고 안내자는 귀띔해줬다.

하지만 용광로와 용광로 사이를 지나는 근로자들의 모습은 처절했다.12∼15세 안팎의 어린 소년들이 시커먼 철가루를 뒤집어쓰고 오갔다.그들은 옆구리에 작은 산소통을 차고 입에는 산소통과 연결된 파이프를 물고 있었다.용광로의 불꽃에서 튀어나오는 먼지 흡입을 막기 위해서였다.이같은 철가루는 바닥에 2∼3㎝나 깔려 있었다.그러나 이들 어린 작업인부의 대부분은 자신의 건강은 아랑곳하지 않고 『숨쉬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파이프를 물지않고 돌아다녔다.

○휴가땐 주민 50% 줄어

취재진은 이 먼지로 호흡이 곤란한데다 원석을 태우고 가공하면서 나오는 일산화탄소에 질식할 것 같아 안내를 더 해주겠다는 것을 뿌리치고 10여분만에 공장 밖으로 나왔다.어려운 작업여건이니 봉급은 많이 주느냐고 안내자에게 물었다.그는 평균 1백만루블(20여만원)을 받는다고 했다.15년동안 이 지역에서 살고 8년동안 이 공장에서 일할 경우 만45세가 지나면 국가로부터 연금이 나온다고 했다.그러나 연금액수는 밝히지 않았다.교대차 나선 50세가 다 돼보이는 공장 노동자는 『연금이 적어 직접 일을 해야 먹고산다』고 했다.

다음날 하오 「공해도시」 노릴스크를 하루빨리 벗어나기로 하고 취재진은 시내의 아에로플로트 사무실을 찾았다.사무실 앞에는 항공권을 사기 위해 모여든 1백여명이 넘는 주민들이 수십m씩 열을 지어 서 있었다.모두가 휴가기간을 이용,타지로 떠나기 위해서였다.항공사의 한 관계자는 『보통 휴가동안 노릴스크시의 주민 50%가 빠져나간다』고 했다.놀라운 일이었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노릴스크라는 지구 최악의 주위환경에서 다만 며칠이라도 빠져나가 보려는 몸부림으로 보였기 때문이다.주민들은 이렇다 할 휴식공간 없이 수십년간 착취에 익숙해져 있었으나 이제는 조금씩 깨치기 시작한 듯 하다.이곳을 벗어나려는 사람들은 이처럼 많았으나 항공사직원은 당분간 항공유의 부족으로 여객기가 뜨지 않으니 목적지와 원하는 표의 장수를 펜으로 써놓고 돌아가라고 했다.<노릴스크=유민·이호정 특파원>
1995-11-1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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