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혜… 외래마실거리 기를 죽였네(박갑천 칼럼)

식혜… 외래마실거리 기를 죽였네(박갑천 칼럼)

박갑천 기자 기자
입력 1995-10-11 00:00
수정 1995-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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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마다 나름대로 구뜰히 여기는 식품이 있다.가령 미국사람들이 버터나 우유를 좋아한다면 일본사람들은 다꾸앙에 낫토(납두)를 찾고 우리는 된장·고추장에 마늘을 즐긴다.음식문화에는 또 독특한 전통이나 습관까지 따른다.혓바닥을 둘러싼 문화는 오랜 세월을 두고 쌓여 내려온다고 할 것이다.

월사 이정구가 『부끄러워서 죽고싶었다』고 표현하는 일이 있다.그가 연경에 갔을때 명나라학자 엄주 왕세정과 친분을 맺었다.어느날 아침 월사가 찾아갔더니 급한 볼일로 나가면서 하인에게 아침식사를 대접하라고 이른다.월사는 들어오는 여러가지 음식을 먹으면서 기다리자 이윽고 주인이 돌아와서 아침은 먹었느냐고 묻는다.안 먹었다고 하자 주인은 하인을 불러 알아본 다음 옥생각 말라면서 말한다.『조선사람은 밥과 국을 먹어야만 식사를 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동패낙송」에 쓰여있는 얘기지만 이게 남과 다른 우리 음식문화의 한가닥.지금도 흔히 겪는다.어느집에 초청받았다 하자.손들은 술안주삼아 이것저것 배불리 먹었는데도 굳이 밥과 국을 내오지않던가.그러니 이월사는 부끄러워할 까닭이 없었을 법하건만 하인의 눈에 츱츱하고 게검스럽게 비쳤을 것이 두려운 자책감이었던 것인지.

한데 이젠 그런 식생활전통이 무너져간다.요즘 세대들은 밥과 국 대신 우유에 빵으로 끼니를 때운다.빈대떡보다는 피자를 찾고 막걸리보다는 양주를 찾는다.김치도 멀리한다.그런터에 참으로 느닷없이 전통음료 식혜가 돌개바람을 일으킨다.만드는 업체가 60여개라는 사실부터 인기를 짐작하게 한다.그동안 맥을 써온 콜라 사이다등 외래마실거리들의 기가 죽었다.남의 먹거리에 취해 제입맛 잃어가는 흐름속에서 식혜맛 그대로 달콤한 움직임이라 않을수 없다.

엿기름과 찹쌀이 주원료인 식혜는 명절이나 제사때 빼놓을수 없는 음식이었다.더러 감주라고도 하지만 엿기름 아닌 누룩을 넣어만드는 감주는 술에 가까운 것이니(「증보산림경제」)구별돼야겠다.식혜의 한자는 「식혜」인데 소리가 비슷한 식해는 생선젓.「규합총서」에 소개된 연안식해의 식해가 그종류다.오늘날에는 식혜와 달라졌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에서의 육장이라는데서 뿌리를 함께하는 모양이다(「훈몽자회」).

전통음료로는 식혜말고도 수정과에 제호탕따위가 있다.반드시 음료업계뿐 아니라 다른 업계도 우리전통과 현대적 기호를 잇는 상술개발에 눈을 크게 떴으면 한다.
1995-10-11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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